움베르토 에코의 신작

움베르토 에코 할배가 또 소설을 냈다. 80대 초반이니 아직은 정정(...)하실 텐데 아무쪼록 한 두 권 더 내길 바라며, 이번에는 어떤 소설인고 하니, 제목은 Numero Zero. 1992년 이탈리아 밀라노가 배경이다.


여기까지 써넣고 보면, 어라? 저거 푸코의 진자(Il pendolo di Foucault)와 엇비슷한 시기 아닌가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루는 주제도 비슷하다. 음모다. 다시 새 소설 얘기를 해 보자.


한 저널리스트가 뭔가 언론사와 잡지사, 방송국들을 많이 갖고 있는 분(누가 떠오르시는가?)으로부터 부름을 받고 신문 편집을 맡는다. 보통은 실제 인쇄본이 나가기 전에 시험삼아 제작하는 “제0호”, 즉 누메로 제로의 신문을 만드는데, 이 신문의 독자는 일반인이 아니다. 협박할 대상들에게 전해지는 특별한 신문이다.


그리고 때마침 동료는 무솔리니가 죽지 않고 아르헨티나로 도망쳤다고 한다(전범들은 죄다 아르헨티나로 도망하는 게 유행이었다. 농담 아님). 그리고는 붉은 여단이나 모로 총리의 암살 등 이탈리아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죄다 무솔리니가 조종하고 있다는 음모론이 떠올랐다.


이 소설의 결말은 무엇일까? 대부분의 서유럽어 본은 늦가을-초겨울 정도에 나오는 모양인데, 예전 소설들보다는 좀 짧다(200 페이지 정도). 사실 결말보다는 저 1992년이 뜻하는 해를 좀 생각해야 할 일이다. 공산주의가 망했으니 이탈리아 좌파들은 구심점을 잃었고, 이탈리아 우파는?


잠깐, 1992년?


예, 고갱님. 생각하는 바로 그겁니다. 마니 풀리테(Mani Pulite) 시작년도(참조 1). 기민당을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 중도 우파도 이당시 완전히 무너졌었다(기민당은 1994년 해체됐다). 그리고는 사이 좋게 베를루스코니의 포르차 이탈리아로 흡수되는 때가 바로 이 1990년대이고, 이탈리아 검찰은 베를루스코니와도 끝까지 싸웠으나... 결과는 모두 아실 것이다(참조 2).


그렇다면 어째서 에코는 저널리즘을 다루게 됐을까? 신문의 역할과 텔레비전의 역할, 그리고 90년대 중반 이후에 떠오른 인터넷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중세인들의 “아침 기도”가 현대인들의 “뉴스 읽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뉴스 읽기라는 것이 어떻게 됐는지는 모두들 아실 것이다.


그냥 주는대로 주워 먹느냐, 아니면 옥석을 가려야 하느냐 하는 기본적인 고민조차 사치가 되어버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약간의 사실과 약간의 허구가 뒤섞이기 시작하면 뭐가 진짜인지 모르게 되고, 여기서부터 음모론이 시작되며, 읽는 이의 좌절감이 들어 있다면 더더욱 이 음모론은 탄력을 받기 시작한다.


1944년의 신문은 단 4 페이지였다고 한다. 지금은 평균 64 페이지라고 하는데(참조 3), 세상에 위기 아닌 분야가 있겠냐만은 저널리즘의 위기 또한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는 게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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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1. Umberto Eco, “Numero Zero”, il libro che ci prende in giro: http://xl.repubblica.it/articoli/umberto-eco-numero-zero/16631/


2. 여러분 혹시 그거 아시는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실제로 법원으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은 건 (별 것 아닌 세금 포탈) 단 1건 밖에 없으며, 수 십 건에 이르는 “문제점”들은 법적으로 무죄였다.


3. Umberto Eco: “A Internet pode tomar o lugar do mau jornalismo”: http://brasil.elpais.com/brasil/2015/03/26/cultura/1427393303\_5126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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