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지하철을 내려 바깥으로 나가던 참이었다.

사흘째 비 내리는 서울 희부윰한 출구를 향해 차박차박 물찬 계단을 밟아오르는데 맨 위 계단참, 지붕도 없는 끄트머리에서 수녀님 한 분이 어딘가를 보면서 그대로 비를 맞고 있었다. 우산이 없는데 어딜 가셔야 하나보다 싶어 잠깐 모셔다 드릴까 서둘러 계단을 올라가니 수녀님은 저 너머 폭우 쏟아지는 횡단보도를 우산도 없이 건너가는 리어카 미는 할머니를 주시하고 계셨다. 짧은 초록 신호가 끝나고 자동차들이 빵빵거리도록 힘겹게 수레를 몰고가는 할머니가 마침내 도로를 무사히 건널 때까지 수녀님도 내내 비를 맞고 있었다. 그 할머니 간신히 맞은 편 인도에 올라 허리를 두드리며 젖은 몸을 추스렸을 때 그때껏 내 옆에 계셨던 수녀님은 그새 제 길 가셨는지 온데간데 없었다. 그리고 오래도록 나는 세상을 정말로 움직이는 것에 대해 곱씹고 다시 곱씹어 본 것 같다.

아주 천천히, 그 누군가를 잊어버릴만큼 느리게 연애소설 읽는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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