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뛰어봤자 제자리~ 대체 어쩌라는 거니?

저는 기억력이 그닥 좋지 않습니다. 생산자 과실 탓을 할 수는 없겠지만, IQ가 분명 신통치 않아요. 특히 자신 없는 게 사람 이름 외우는 일입니다. 더 자신 없는 건 당사자 모르게 욕 하는 일이죠. 5년 전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그날 엄청 바쁜 날이었습니다. 일 문제로 A씨와 점심식사가 예약돼 있었죠. 점심시간 내내 낯간지러운 자기 PR에 ‘네, 그렇군요. 아.’ 를 영혼 없이 돌려막기를 했습니다. 할 수만 있었다면 후배를 술로 보내는 것에 있어 전설적인 선배를 끌고 오고 싶은 심정이 되었죠. 회사의 독촉 전화가 올 무렵, 저는 선방 문자라도 날려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그리하여 ‘자화자찬에 열중하는 A씨의 대화를 끊고 나갈 수 없으니 기다려 달라’는 내용을 줄여 ‘A씨, 좀 이상해요.’라고, 나름 순화된 표현을 B씨가 아닌 A씨에게 보냈습니다. 잠시 뒤 정적. A씨는 무너지지 않는 미소를 유지하며 ‘이게 무슨 말이냐’고 하필이면 제게 물었습니다. 에헤라 디여~. 그 뒤에도 ​누군가를 욕할 때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던 걸로 봐서는 뒤에서 욕하는 데 제가 확실히 재주가 없다는 걸, 신은 줄기차게 주의를 주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이렇듯 영화 ‘메이즈 러너’는 저만큼이나 기억력에 문제가 있는, 그러나 ‘몸짱’ 수컷들이 대거 나옵니다. 굳이 차이점을 꼽자면 저의 기억력은 원래 품질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고, 이들의 기억력은 의도적으로 삭제 당해 안좋게 된 것이죠. 이들은 사방이 막힌 미로에 갇혀 나름의 규율을 만들어 평화롭게 형님 동생하며 삽니다. 하지만 유독 호기심이 많은 주인공 ‘토마스’의 등장으로 이들의 세계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죠. 이 안에서 예측 가능한 삶을 살자는 다수에 반기를 들고 예측 불가한 삶을 통해 희망을 찾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 매력적인 이야기의 상당 부분은 뜀박질을 잘하는 몸짱 사내들이 줄기차게 미로를 헤매는 내용으로 메워집니다. 문제는 미로의 패턴이 매일 바뀌고, 미로에 사는 ‘그리버’라는 괴물의 공격도 포악해진다는 것. 토마스의 배짱과 도전으로 이들은 이 길로 갈 거냐 저 길로 갈 거냐 고민하다가 얼렁뚱땅 몇몇 ‘그리버’를 죽이고 탈출에 성공합니다. 알고 보니 이들이 뇌가 썩어 들어가는 전염병에 면역력을 가진, 나름 우월 유전인자를 가진 사내들이었다는군요. 결국 자신들이 테스트 당하는 기계였다는 사실에 분노하며 종국엔 ‘후리덤’을 찾습니다. ‘그래서 이게 다야?’ 싶은 순간에 뒤통수를 치는 소심한 반전으로 ‘아 윌 컴백’을 외치며 ‘메이즈 러너 2’를 예고합니다. 굳이 힘을 빼고 싶진 않지만, 속편이 더 큰 스케일을 자랑하더라도 결론은 비슷할 거 같네요.

아무튼 이 영화를 보고 있자니, 인생사 자체가 어디가 처음이고 어디가 끝인지 모르는 미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바퀴 돌고 같은 자리로 와보면 예전 그 자리가 아닌 것 같고 조금 더 넓은 혹은 좁은 자리로 왔다 싶으면 결국 같은 자리인 겁니다. 소설가 김중혁은 이에 대해 ‘인생사 모기향’(우리의 삶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실은 같은 자리를 맴돈다는 야심찬 이론) 이라는 근사한 이름을 붙이기도 했지만, 어차피 우리는 개고생이라는 인생의 그래프를 그리기 위해 엇비슷한 실수를 반복하며 고난의 연대기에 익숙해져갑니다. 이렇듯 인생은 리셋할 수도 없고, 리와인드할 수도 없는, 힘든 텍스트입니다. 그리하여 세월호 참사 1년 이후 도대체 뭐가 달라졌는가에 대해 생각해보던 저는 여야의 정치 쟁점화 함수와 국민들의 애증 혹은 무관심의 쌍곡선이 평행하는 모습만 참담하게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이 미로는 어떻게 헤어나올 수 있을까요. 아니, 빠져나올 수 있기나 한 걸까요. 회의주의자가 되어가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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