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 최초의 메이저리거를 꿈꿨던 최경환


야수 최초의 메이저리거를 꿈꿨던 최경환

1972년 5월 12일 출생


지난 3월 15일 9회말 2아웃에서는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이자 현 기아 타이거즈의 내야수로 활약하고 있는 최희섭 선수를 소개했던 적이 있는데요. 하지만 최희섭보다 더 오래 전 메이저리거를 꿈꿨던 한국인 타자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현재 NC 다이노스의 타격 코치를 맡고 있는 최경환 코치였습니다. 한국인으로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은 타자는 최희섭, 추신수, 강정호 등이 대표적인데요. 최경환 코치는 1995년 경희대를 졸업하고 캘리포니아 에인절스(현 LA 에인절스)와 입단 계약을 맺으며 한국 선수로는 코리안 특급 박찬호에 이어 한국 두 번째로 미국 땅을 밟게 된 선수였습니다.

메이저리거 투수 박찬호, 타자 최경환을 꿈꾸다

91년 성남고를 졸업하고 경희대에 입학한 최경환, 경희대 2학년 때인 92년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참가한 한-미 선수권 대회가 그의 야구 인생을 바꿔 놓았습니다. 당시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의 아시아 담당 스카우트가 그를 눈여겨봤고, 최경환은 경희대 졸업과 함께 10만 달러의 계약금을 받으며 야구 선수라면 누구나 서보고 싶은 무대를 목표로 미국행을 선택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미국 생활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LA 다저스에 입단한 박찬호와는 달리 그는 메이저리그가 아닌 마이너리그, 그 중에서 가장 낮은 루키 리그부터 시작해야 했고 생활고로 인해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마이너리그 생활을 견뎌야만 했습니다. (미국의 마이너리거 역시 한국의 2군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열악한 대우, 낮은 연봉, 경기 출장 전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는 등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메이저리거의 꿈을 꾸며 노력하고 있다.) 96년 4월엔 캘리포니아에서 보스턴으로 트레이드 되었지만 이후 싱글A 리그를 전전했고, 워킹 비자 문제로 한동안 멕시칸리그에서 뛰기도 했습니다. 결국 멕시칸리그와 보스턴 산하 싱글A를 전전하면서 메이저리그에 대한 꿈은 점점 멀어져만 갔고 결국 그는 99년 초 메이저리거의 꿈을 접고 LG 트윈스의 입단 제의를 받고 한국행을 선택하게 됩니다.

해외파 출신으로 화제를 모았던 2000년 신인 드래프트

좌투좌타의 외야수인 최경환은 메이저리거의 꿈을 포기하고 결국 2000년 신인 드래프트 1차 우선 지명을 통해 LG에 입단했는데요. 사실 LG 트윈스는 1995년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이미 미국 입단 계약을 맺은 상태였던 그를 2차 5라운드 지명에서 지명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명권 유효기간이었던 3년 안에 그가 복귀하지 않으면서 그에 대한 지명권은 사라진 상태였죠. 00년 신인 드래프트를 되돌아 보면, 당시 LG가 최경환을 지명한 것은 해외파 출신이었던 그의 가능성을 높게 사기도 했지만 서울 지역에 1차 지명을 할만한 재목이 없다고 판단한 것도 있습니다. 실제로 라이벌 팀 두산은 충암고 출신의 투수 문상호를 지명했는데 프로에서 별다를 활약을 하지 못하고 2006년 은퇴한 선수였습니다.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갈 사실은 두산이 문상호란 선수를 지명하면서 함께 저울질 했던 다른 선수는 같은 학교 동기이자 현재 기아에서 뛰고 있는 외야수 김주찬이었다고 하네요. 참고로 그 당시 김주찬은 삼성에 지명되었고 유격수를 보았습니다.

2000년도에 입단한 선수에 대한 소개는 아마도 처음인 것 같은데요. 아직도 꽤나 많은 선수들이 현역 선수로 활약하고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선수를 꼽자면 삼성의 에이스 아니 이젠 한화의 선수인가 된 배영수, 이 해 신인왕이었던 SK의 이승호(현 NC 다이노스), 롯데의 강영식, kt의 김상현, 박기혁, 기아 주장 이범호 등이 있습니다. 또한 고교 시절 성남고 출신인 그의 동기로는 OB 출신으로 선수협 결성을 이끌었던 강병규(현 방송인)과 1년 후배 박종호(현 LG 트윈스 수비코치)가 있습니다.

순탄치 못했던 한국에서의 첫 두 시즌

김재현, 서용빈, 이병규, 심재학 등 전통적으로 뛰어난 좌타자를 많이 보유했던 LG 트윈스에 입단하면서, 해외파 출신으로 또 한 명의 대형 좌타자로 활약하여 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한국에 돌아온 최경환은 한국 야구에 적응하는데 꽤나 애를 먹었습니다. 우선 99년 초 메이저리그에서 방출된 이후 9개월 가량의 공백이 있었고 그의 정신적 지주였던 아버지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슬럼프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결국 그는 2000년 95경기, 2001년 12경기에 출장하는데 그치며 시즌 후 LG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게 됩니다. (2000년엔 95경기에 출장해 0.246의 타율을 기록하는데 그쳤고, 2001년엔 12경기에 출장해 단 1개의 안타도 때려내지 못했다.)

몸을 사리지 않는 허슬 플레이로 다시 태어나다

시즌 종료 후 팀에서 방출 당한 최경환은 이대로 야구를 포기할 수 없다며 멕시칸리그, 대만 등 야구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떠날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당시 두산의 김인식 감독이 그를 재능을 아쉬워했고 그는 어렵사리 두산의 유니폼을 입게 됩니다. 영입 당시만 해도 좌타 대타 요원으로 평가 받던 최경환의 야구 인생은 2002년 본격적으로 빛을 보게 됩니다. 126경기에 출장하며 0.274의 타율과 13개의 홈런을 기록하면서 자신의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고, 이후 두산의 화수분 야구가 탄생하기 전까지 두산 외야진의 주축 선수로 활약했고 또한 두산 야구의 캐치프레이즈인 ‘허슬 두’는 그를 상징하는 말과 같을 정도로 몸을 사리지 않는 플레이로 야구에 대한 그의 열정은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2006년 5월 16일 팀 동료 이승준과 함께 롯데의 최준석, 김진수와 2대2 트레이드가 성사되며 롯데로 이적하게 됩니다. 이 트레이드는 당시 제 1회 WBC 대회에서 김동주가 부상을 당하며 오른손 거포 부재에 시달려야 했던 두산과 외국인 용병의 부진으로 즉시 전력감 외야수가 필요했떤 롯데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트레이드였습니다. 하지만 트레이드 이후 최준석은 두산의 중심타자로 거듭난 반면 최경환은 그 해 0.209의 타율을 기록하며 부진해 트레이드의 명암이 엇갈렸습니다. 트레이드 후 이듬해에도 최경환은 부진에서 탈출하지 못하며 시즌 종료 후 롯데에서 방출되며 자신의 야구 인생 세 번째 방출을 맛보게 됩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2008년 기아 타이거즈와 계약을 하며 선수 생활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고, 주로 좌타 대타 요원으로 활약을 펼치며 이종범과 함께 노장 투혼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최경환은 2009년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5:4로 뒤지고 있던 7회말 3루타를 때려내며 동점을 만드는데 일조했고, 기아는 9회말 나지완의 끝내기 홈런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하지만 우승의 기쁨도 잠시 그는 시즌 종료 후 이재주, 장문석 등과 함께 방출을 통보 받습니다. 그러나 2010년 바로 기아 타이거즈 2군 타격코치로 부임하면서 은퇴 후 바로 지도자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고, 2012년엔 SK 와이번스를 거쳐 작년부턴 NC 다이노스의 1군 타격 코치로 부임한 상태입니다.

한국인으로서는 박찬호에 이어 두 번째이자 야수로는 최초였던 그의 메이저리그 도전은 아쉽게도 실패로 끝났지만, 몸을 사리지 않는 허슬 플레이와 야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던 최경환 선수. 그 마음을 NC의 신예 선수들이 많이 본받아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선수들이 되길 기대해봅니다.

사진 출처: 기아 타이거즈, 동아일보, 포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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