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의 이력 -위키트리-

박정희의 이력 박정희는 여순 반란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모든 것을 자백하고, 백선엽이나 원용덕과 같은 만주군 출신 군인의 옹호로 사형은 면하고 예편되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다만 박정희는 민간인 신분으로 육군본부 정보국 문관으로 재직하긴 했다. 이 와중에 한국전쟁 발발, 소령 계급을 달고 군인으로 복직되었다. 그 후 순조롭게 군생활을 이어가면서 준장 소장으로 차례로 진급하였고, 6군단 부군단장, 군수기지사령관, 육본 작전참모부장 등의 요직을 거치게 된다. 그리고 쿠데타 당시에는 2군사령부 (현 제2작전사령부) 부사령관으로 재직 중이었다. 그런데 사실 군에서의 부사령관은 예비 예비역 그러니까 곧 나갈 사람이라는 의미가 크다. 군생활 동안 박정희는 정권에 의해 요주의 인물로 찍혀 있었다. 그것은 박정희의 정치적인 기질에 기인하였는데 제일 먼저 남로당 전력이 있었고 1952년 부산 정치 파동 당시 육군본부 제2작전참모부장이였던 박정희는 "육군장병들에게 고함"이라는 훈령(217호)을 기초하여 군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고 현 자신의 임무에 충실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 때에는 9년 뒤의 상황과는 달리 계급도 대령으로 많은 상관과 선배들을 제치고 무슨 일을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 일단 별은 달고 때를 기다리자. 1960년 3.15 부정선거가 터지자, 박정희는 자유당 정권을 무너뜨리고 집권을 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 포항에 주둔한 김동하 제1 해병대 상륙 사단장과 공모하여 서울을 칠 계획을 꾸몄지만 4.19 혁명이 터지면서 이 역시 종이 위의 구상에 그쳤다. 하지만 박정희는, 1960년 5월 2일, 육군참모총장 송요찬을 위시로 한 수뇌부에 3.15 부정선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날 것을 요구하기도 했으며 김종필을 필두로 한 육사 8기생의 연판장이 돌아 수뇌부의 불신을 천명하자 박정희에게 이를 갈면서 그를 박살내려던 송요찬은 실각했고 군 수뇌부는 붕괴했다. 어쨌든 그가 가지고 잇는 정치적인 기질은 육본으로 하여금 그를 경계하게 했고 박정희가 쿠데타니 어쩌니 소리를 하고 다니자 아예 그를 좌천 또는 예편시킬 구체적인 입안을 하게 되었다. 게다가 그의 과거 좌익에 가담했던 경력이 발목잡아서, 결국 육본 작전참모부장에서 2군부사령관으로 좌천당한다. 그러나 이는 박정희가 5.16 쿠데타를 오히려 결심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즉, 박정희는 대외적으로는 4.19 혁명 이후의 사회불안 때문에 우국충정의 마음으로 부득이 쿠데타를 일으키게 되었다고 변명했다.'우국충정'의 마음이 자유당 집권기의 개판을 보고 품은 것이라면 해명이 되는 것 이긴 하지만... 실제론 청년시절부터 나름 야망은 있었던 듯 하다 박정희의 제자나 친구들의 증언에 따르면 교사 시절 문경의 하숙집에 나폴레옹의 초상화를 떡 붙여놓고 숭배에 가까운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그리고 군인이 된 후에도 나폴레옹이나 터키의 케말 파샤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 했다고[9]. 또한 그는 일본군 장교 시절에 황도파의 영향을 많이 받은듯 하다. 소령으로 복직된 후 2.26 사건을 거론하며 가까운 장교들에게 "우리도 이런식의 군사혁명을 해 보자"는 식의 이야기를 종종 했다고 한다. 6군단 부군단장 시절의 박정희 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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