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성게국

늦봄에서 초여름까지, 제주의 제철 음식 가운데 하나는 '성게'다.

왜 그 삐죽삐죽한 가시뭉치같은 것. 5월부터 6월이면, 성게는 바다 속에서 두툼하게 알을 품는다. 해녀들은 이 때 부지런한 '물질'을 통해 망사리에다 성게들을 주워담는다. 성게와 성게알은 당연히 다른 것이지만, 적어도 그 쓰임새에 있어서는 인간에게 동일하다.

알을 제외한 성게는 껍데기밖에 남지 않는 것. 성게를 따는 이유는 성게알을 먹기 위함이다. '우니'라는 일본말로도 불리는 성게알은 이제 제주도 횟집의 곁반찬 가운데서도 상당한 인기 품목이 되었다. 한 종지 가득히 담긴 성게알을 숟가락째 입에 넣으면 고소하고 청량한 바다 내음이 그대로 목 안으로 흘러든다. 식당의 테이블에 오르기 오래 전부터, 성게는 대일 수출품으로 각광을 받아 왔다. 해녀들은 물질해 온 것 중에서 모양이 망가지거나 알이 너무 작아 상품이 될 수 없는 것들을 집으로 가져 가 음식을 해 먹었다. 맨 밥에 성게알을 비벼 그대로 성게알밥을 해 먹기도 했지만 대개는 국에 넣어 끓였다.

제주 전통 음식 가운데 하나인 성게미역국은 섬에서는 그냥 '성게국'으로 불린다. 섬에는 소고기 같은 건 없었고, 시원한 미역국과 성게알은 잘 어울렸다. 그러므로 성게알이 실한 봄부터 여름까지는 미역국에 성게를 넣어 성게미역국으로, 나머지 계절에는 제주 고둥인 보말을 넣어 보말미역국으로 끓여 먹었던 것이다. 제주 동부의 해변에서는 모래사장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보말에 비해 성게는 특정한 계절에만 수확이 가능했으며 그것도 해녀들의 숨찬 노동으로만 얻을 수 있었으므로 제주에서는 미역국 가운데 성게가 들어간 것을 으뜸으로 친다.

불린 미역을 볶을 때 성게를 넣고 한 소끔 익혀 맑게 끓여낸 성게국은 개운하면서도 시원하다. 단백질이 많고 철과 아연이 풍부한데다 비타민까지 두루 갖춘 성게알은 자양 강장, 피로 회복, 피부 미용에 특히 효과가 좋다고 한다. 고된 물질에 가사노동까지 하루도 쉴 날이 없었던 섬 어머니들의 아픈 육신을 달래는 데는 성게만한 것이 드물었을 것이다.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제주 바다는 지금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다. 백화 현상, 우리말로는 갯놀음 현상이라 하여 바다 밑바닥이 허옇게 변하고 해변 바위에 백태가 낀 듯한 증상이 거의 모든 제주 바다에 번져 있다. 색깔만 바뀌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럼으로 해서 바닷속 생태계에 나쁜 영향을 주는 게 문제다. 백화현상이 일어난 바다 속에는 전복과 성게가 자라지 않고 수초만 무성하다. 이에 따라 전복과 성게를 먹고 사는 어류들이 옮겨가고 결국 바다는 죽어간다. 지금 제주 바다 어느 곳을 둘러보더라도 이같은 백화 현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원인은 지구 온난화 때문이다. 사실상 대책이 없는 셈이다. 그로 인해 해녀들은 점점 더 멀리 물질을 나서야 한다. 성게는 이제 가까운 바다에서는 쉬 건질 수 없는 귀중품이 되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몇 십 년 내에, 제주에서 먹고 있는 각종 성게 음식들을 기록물로만 만나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환경은 그토록 우리와 밀접한 것이다. 다음달 특집으로 제주 테마를 준비하는 패션지 디렉터 분으로부터 오전에 전갈을 받았다. 성게미역국과 전복죽 사진을 갖고 계신 게 있으면 급히 보내주셨으면 한다고. 전복죽 사진은 보냈지만 성게국 사진은 보낼 수 없었다. 찍어둔 게 없었기 때문이다. 성게 미역국을 먹어보지 못한 것은 아니다. 그 반대로, 정말 여러 곳에서, 이름난 곳은 물론 유명하지 않은 숱한 식당들에서 성게국을 맛봤다. 그렇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지인의 어머님이 해주신 성게국 맛이 난 적이 없었다. 그리하여 사진을 찍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이 조미료 때문인지 식당이 가지는 손속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내 선입관 때문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름난 제주 전통 식당의 성게 미역국도 충분히 괜찮았지만 바다 내음까지는 풍기지 않았다. 그건 아무래도 성게국이 본디부터 '실시간 음식'이었던 데서 비롯하는 게 아닐까. 방금 따온 미역과 성게로 지금 바로 끓여내는 것이지 미리 끓여놓거나 얼려둔 재료를 사용하는 데서 향기를 잃어버리는 게 아니었을까. 아무튼 나는 단 한 곳도 성에 차는 성게미역국을 먹어본 기억이 없다. 제주도 지인의 집에 찾아갔을 때 그 어머니께서 끓여주신 단 한 번의 특별한 예외를 제외하면 말이다. 디렉터인 그녀는 '미역국 한 그릇이 간절하다'고 문자를 보냈다. 성게미역국은 제주에서 쉽게 맛볼 수 있는 음식이니 다른 누군가는 사진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검색엔진을 통하면 작은 이미지 정도는 쉽게 찾을 수도 있다. 모양이 괜찮은 음식점의 성게국이라도 찍어둘 걸, 잠깐 후회했다가 마음을 고쳐 먹었다. 그건 세계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까지 나는 제주에 있었으나 이번에는 아예 성게국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다녔다. 맑게 단장한 한담~곽지 바닷길과 비 쏟아져 크게 터진 엉또폭포, 새로 열린 사려니 숲길을 찾아다니며 이렇다 할 음식을 먹은 게 없다. 점점 더워지는 바다, 점점 드물어지는 성게, 점점 포기하게 되는 옛것들... 테크놀로지는 정말 번영을 가져다 주는 것일까. 산업화는 피할 수 없는 발전의 단계인가.

우리는 공짜로 주어진 수많은 것들을 풍요의 댓가로 희생시킨 다음, 조악한 대체물들을 그렇게 얻어진 풍요를 지불하며 사들이고 있는 건 아닐까. 성게알은 이제 수입되고 있다. 콩이 그러했듯이, 밀이 그러했듯이, 명태가 그러했듯이. 나 역시 성게 미역국 한 그릇이 간절하다. 어느 집이나 끓이던 성게 미역국, 식당에서 돈 주고 사먹지 않던 성게 미역국, 너무나 흔하지만 그 자체가 삶이요 생태였던 성게국 한 그릇이 말이다.

진짜 제주를 본다는 것은, 경험한다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져 가는지도 모르겠다.

아주 천천히, 그 누군가를 잊어버릴만큼 느리게 연애소설 읽는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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