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본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단편화된 여성 묘사를 극복한 <매드맥스>

샤를리즈 테론은 칸 영화제의 기자회견에서 이 영화가 페미니즘 영화냐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이런 답변을 낸 바 있다. "매드맥스 4의 좋은 점은 조지 밀러 감독이 페미니즘적인 시각을 가지고 만들지는 않았지만, 그는 단지 진실을 추구했고 이를 통해 여성도 복잡하고 흥미로운 존재라는 것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뒀기에 '매드맥스4'는 훌륭한 페미니스트 영화가 됐다"

-샤를리즈 테론

기존의 액션 영화들이 여성을 오로지 남성 우월주의적인 시각으로 매우 단편적으로 그려냈다면, <매드맥스4>의 여성묘사는 여성이기 이전에 한명의 사람으로서의 생생한 개성을 살려냈다. 퓨리오사 외에도 씨앗을 품고 다니는 할머니나, 다시 임모탄에게로 달려가는 치도, 그리고 책임감 있게 임모탄과 대적하는 스플렌디드에 대한 묘사를 보라.

여성이 등장하면 당연히 키스씬을 집어 넣어야 한다는 강박증을 벗어나자 영화는 놀라울 정도로 깊어졌고, 풍부해졌다. 달리 생각하면 그간의 여성이 등장하는 영화들은 얼마나 단편적이었던가?

왜곡된 페미니즘의 이미지

<매드맥스>를 페미니즘 영화로 꼽아도 손색이 없는 건 여성에 대한 묘사가 세밀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임모탄의 아내들이 절단기로 정조대를 끊는 장면은 그에 비해 안면마스크를 끊어내지 못해 절삭기를 효자손처럼 마구 긁어대는 맥스의 모습과 위트있는 대조를 이루는데, 마침내 맥스가 자신을 옥죄던 안면마스크를 끊어내는 순간, 그 때 부터 퓨리오사 일행과 맥스는 같은 동료가 되어 임모탄 조에 대적한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매드맥스>의 진정한 페미니즘적인 함의이다.

임모탄 조의 노예라는 사실은 임모탄의 아내들이나, 맥스나 똑같은 입장이었다. 그런데도 그 둘은 처음 만났을 때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고 으르렁대며 각을 세웠다. 퓨리오사의 입장에서는 '피주머니'인 맥스는 언제라도 퓨리오사 일행을 순식간에 잡아채 '천국으로 가는 문'을 제 일착으로 찜할 수 있는 임모탄 조의 수하였고, 반대로 맥스의 입장에서 퓨리오사 일행이 가지고 있는 자원은 자신의 독고다이 행보를 위해 필요한 물품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더 큰 것을 잊고 있었다. 이러나 저러나 어쨌건 임모탄 조는 공공의 적이라는 사실이다. 게다가 맥스는 임모탄 조의 세계에서도 가장 비인간적인 대접을 받는 피주머니 아니었나.

남성과 여성의 공통의 적

한국사회에서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홀대받기 시작한 것은 호주제 폐지와 군가산점 폐지 논란 이후 부터였다. 김대중 정권이 여성가족부를 세운 것도 남성들의 차별의식을 키우는 한 원인이 되었다. 따지고 보면 남성과 여성이 싸울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군 가산점 폐지는 대한민국 모든 군인들에 대한 보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군생활 2년에 대한 보상은 당연히 존재해야하고, 이는 군 사병들의 복지나, 월급을 올려주는 보편적 보상으로 확대되어야 정상이다. 대만만 하더라도 군인의 월급이 한달 50만원 정도는 된다. 2년 복무하면 1년치 대학등록금이 생기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군가산점 폐지는 남성 VS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군인이라는 무상착취 계급과 군인을 무상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국방비용을 퉁친 정부 사이의 문제였다. 그러니 피주머니 맥스가 싸워야 할 대상은 퓨리오사나 임모탄 조의 아내들이 아니라, 임모탄 조였다는 사실은 곰곰 뜯어보면 기가 막힌 사회적 우화다. 마찬가지로 군대와 임신을 등가치환하는 논리도 매우 편협한 시각에서의 문제해결이다. 군인이 정당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과 마찬가지인 이치로, 사회 또한 임산부들 (출산휴가, 사내 육아소등)에 대해 배려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나는 고생했으니 너도 고생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강요는 사회불평등 문제를 대물림하는 논리로 쓰이며, 아무리 이 논리를 세련되게 꾸며도 일일드라마에서 시어머니가 며늘아기에 대해 얄미운 감정을 갖는 메커니즘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여성에 대한 공격성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매드맥스> 내에서 여성혐오주의자들의 전형을 하나 뽑으라면 눅스를 뽑겠다. 눅스는 여성을 만난 적도 없고, 그래서 사랑을 받는 다는 것의 의미조차 모른다. 그는 공격성에 도취되어서 자신이 정말로 착취당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스스로의 목숨을 마구잡이로 내던진다.

눅스가 자기 자신에 대해 다시 눈뜨게 되는 계기는 케이퍼블이 그의 자존감을 살려주면서부터이다. 여성에 대한 히스테릭한 반응은 다름 아닌 '자존감'의 고갈에서부터 비롯된다. 달리 말하자면 자신의 밥그릇이 위협받는 것에 대한 공격적인 대응이 곧 사회적 히스테리라고 할 수 있다. 눅스는 죽음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죽음을 향해 돌진하는 태도 조차도 사회적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공격성의 근원에는 바로 이런 인정받고자 하는 강력한 동기가 항상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정된 자원을 일부가 독점할 것이 아니라, 최대한 공평하게 나누면 될 일이다. 그런데도 임모탄 조는 '물에 중독되지 말라'는 주문을 외치며 자원을 움켜쥐고서는 교주처럼 행세한다. 여성 혐오주의자들은 바로 이런 '한정된 자원 논리'에 중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생존 경쟁에서 살아 남는 것만이 정의라는 극우적 관점 말이다.

자유에는 필연적으로 불안이 따른다

따지고 보면 임모탄 조의 아내들은 굳이 바깥으로 도망치지 않아도 되었다. 그녀들이 입고 있는 드레스는 추격전이 벌어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상당히 깨끗하게 잘 보존되어 있는 상태였고, 영양 상태 또한 좋았다. 물을 정말로 물쓰듯이 쓰고 있는 장면을 보아선 아마도 임모탄은 그녀들에게 물도 무제한으로 제공했던 것같다. 스플렌디드가 좌초되었을 때 임모탄이 초인의 능력을 발휘해서 그녀를 위해 몸을 날리는 장면을 본다면, 그는 노쇠하긴 했으나 의외의 순정남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녀들은 예속이 아니라 자유를 원했다. 그녀들은 손수 임모탄 조와 대적하기 위해서 몸을 던졌고, 스스로 보초를 섰으며, 스플렌디드는 심지어 자기 자신을 인질로 내세워 임모탄의 공격을 막아 냈다.

여성혐오주의자들은 모든 여성들이 임모탄의 아내들처럼 굴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매드맥스>가 보여주듯, 단지 돈에 의해서, 혹은 여러 조건에 의해서 스스로를 속박하는 것을 그 누가 좋아하겠는가. 물론 자유에서 오는 불안을 극복하지 못하고 임모탄에게로 다시 돌아가고자 하는 치도 같은 여성들이 존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예속적인 인간은 남성에게도 똑같은 확률로 존재할 수도 있다. 여성들이 결혼문제에 경제적인 여건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면, 출산과 육아, 그리고 그밖의 사회가 책임져야 할 사회안정망과 복지제도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그것을 상쇄할 수 있는 조건이 경제력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성들이 투쟁해야 하는 건 여성들이 아니라, 죽어라고 일을 해도 애 하나 키우기 힘들고, 노후가 보장되지도 않는 사회시스템이 아닌가? 그렇게 본다면 남성과 여성은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연대의 대상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최근에는 '아몰랑'이라는 단어가 여성들의 몰개성적인 정치성을 비유하는 은어로 쓰이고 있다. 역으로 따지고 싶다. 그러는 남자들 다수는 정치에 대해서 유식한가.

정치/시사적인 사안에 대해서 거의 모든 팩트를 체크하고, 꼭 박사학위 논문을 쓰듯이 자료를 조사할 수 있는 사람은 1%도 채 되지 않는다. 지성의 문제이기 이전에 시간의 문제이다. 칼퇴근 하기도 벅찬 근무환경이다. 인생에는 정치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다른 문제들도 많다. '아몰랑녀'를 탓할 것이 아니라, 그런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어떻게든 정치와 시사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에 박수를 보내야 하는 것 아닌가? 설령 당신이 뭔가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 역시 극히 일부의 관점에서 취사 편집된 것일 확률이 굉장히 높다. (꼭 모 커뮤니티가 팩트팩트 거리지만 그 팩트들 자체가 특정 컨텍스트 안에서 선별된 것처럼.) 퓨리오사와 임모탄의 아내들이야말로 어떻게 보면 '아몰랑니즘'의 진수를 보여주는 행동을 하고 있다.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그녀들은 임모탄의 체제 보다 더 나은 세계가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과학적으로 증명해내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임모탄의 체제가 잘 못된 것임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팩트 체크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윤리적 당위가 없이 무미건조한 숫자나열만 하며 '물에 중독되지 말라'고 한다면 과연 무엇이 바뀔까? 기득권은 늘 수치를 제공한다. 기득권이 제공하는 수치로만 살았다면 아마 주5일 근무도 없었을 것이고, 무상 교육 또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계의 절반에 무지한 남성

오히려 생리휴가문제만 하더라도, 세계의 절반에 대해 무지한 건 뭇 남성들이다. 생리통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심지어 얼굴이 붓는 경우도 있다), 육아문제가 얼마나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지, 가사일이 얼마나 무료하고 또 사람에게서 기력을 빼앗아 가는 건지 제대로 알고 있는 남자가 얼마나 될까? 페미니즘이 근본적으로 건드리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무지에서 비롯된 차별이다.

페미니즘은 성에 의한 차별에 반대한다. 성차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선결과제는 남성VS여성, 신세대VS구세대 등 사회 시스템 전체의 문제를 그대로 방기한 채 가상의 적을 만드는 권력이다.<매드맥스>를 훌륭한 페미니즘 영화로 꼽아도 손색이 없는 건, 영화속 여성들이 남성과 투쟁하여 자신들만의 권력을 쟁취하기 때문이 아니다. 여성들과 남성이 함께 싸워야 할 억압의 존재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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