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잘못을 징계하여 훗날의 위기에 대비하라 <징비록 1: 임진왜란, 피로 쓴 교훈>

E. H.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했습니다. 즉, 과거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이해가 있어야만 미래를 통찰할 수 있는 안목을 얻을 수 있는 것이죠. 여전한 인문학의 인기 속에서 그 한축을 담당하는 역사의 중요성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에 더해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게 TV사극입니다. 최수종이 주연을 맡은 사극이 많다보니 인터넷에 ‘역사를 만드는 최수종’이라는 유머글도 있던데, 최근에는 ‘징비록’이라는 드라마가 또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더해 징비록이나 류성룡을 키워드로 한 책도 출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TV드라마에 흥미가 없을뿐더러 거의 대부분의 사극이 역사왜곡 논란을 겪다보니 사극은 특히 꺼리게 됩니다. 역사를 배우는 건 중요하지만 사료에 근거한 제대로 된 역사서를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씀드린 대로 워낙 징비록이 인기인데다 소설형태로 쓰인 김훈의 <칼의 노래>와 <남한산성>을 인상 깊게 읽은 경험이 있어, 소설형태로 출간된 많은 징비록 중에 심사숙고를 거쳐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특히 이 책은 현재 방영중인 ‘드라마 징비록‘의 내용을 소설로 출간한 것으로 총3권까지 나올 예정이라고 합니다. 드라마 징비록을 즐겨 보시는 분들이 읽는다면 시너지효과를 발휘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드네요.

징비록 1권은 조선의 제14대 왕 선조가 '종계변무'를 이뤄낸 장면으로 시작합니다(종계변무란 명나라가 태조의 조선 건국을 역모라고 기록한 내용을 바로잡는 것). 그리고 일본을 통일한 풍신수길이 조선을 침략해 20일 만에 도성을 빼앗기게 되는 과정, 선조가 개성과 평양으로 파천하는 과정, 이순신의 등장, 패배를 거듭하던 조선군이 양주에서 첫 승전보를 올리는 부분까지 빠르게 전개됩니다. 막 책읽기 속도가 붙는 시점에서 마지막 페이지가 나오니 아쉽습니다.

사실 임진왜란은 씁쓸한 역사입니다. 이 시기의 역사를 복기하는 게 내키지는 않지만 그 역사에서 우리가 배울 점을 찾기 위해서라도 2권과 3권 출간을 기다리며 다른 역사서를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이 종계변무를 이뤄낸 장면으로 시작한다고 말씀드렸는데, 선조는 조선이 세워진 후 정통 왕비가 아닌 측실 부인이 낳은 왕자로서 왕위에 오른 첫 번째 임금이니 명분을 세울 수 있는 일에 더욱 기뻐했겠죠. 사실 조선시대는 유교적 명분질서가 지배한 시기이기도 한데요, 책을 읽는 내내 도대체 이 명분이 뭐라고 이러나 싶은 부분이 한둘이 아닙니다.

이 시기는 조선통신사가 150년 간 공백상태였고 일본은 풍신수길이 통일을 이룬 시기입니다. 즉 외부환경 변화가 심한 시기임에도 정세를 파악하거나 정보를 획득하려는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오늘날 기업을 운영함에도 환경변화를 예측하고 정보를 획득하고 그 정보를 잘 해석하고 활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도대체 조선의 국정운영이 언제부터 무너진 걸까요. 징비록에 담긴 뜻 그대로 미리 대비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또한 발전을 위한 협력보다는 동인과 서인간 당파싸움이 이어지며 어떻게든 상대방 세력을 밟고 올라가 권력의 중심에 서고자 노력합니다. 국난 상황, 임금이 파천하는 와중에도 상대의 과거 발언이나 행동을 트집 잡아 파직시키려 애쓰고, 그러다보니 책임자와 담당자가 자주 바뀌며 혼란이 이어집니다. 무엇보다 위기 상황을 끝내기 위한 협력이 요구되는 상황에서도요. 이산해가 선조에게 올리는 말씀이 그 당시는 물론 오늘날에도 곱씹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나라가 이리 참담한 지경이 된 원인은 명분에만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백성에게 풍요로운 삶을 주고, 나라를 부국강병하게 하려면 명분보다는 실리를 취하셔야 합니다. 신이 파천을 홍호했던 것도 명분보다는 실리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대부분의 대신들은 아직도 명분에만 집착하고 있습니다. 허나 류성룡 만큼은 명분과 실리 사이에 균형을 지니고 있으니 지금의 국난을 극복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인물입니다.” (258p)

이런 상황이니 당연히 조정에 대한 백성들의 믿음도 약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관군이 왜구들을 막아요? 차라리 마을 개가 왜구들을 막겠습니다! 먹고 살기도 힘든 백성들은 평생 짊어지는 그놈의 군역 때문에 강제로 잡혀 있다시피 하고, 군사들의 봉족 노릇을 하는 백성들은 죄다 도망가는 판국에 누가 왜구들을 막는다 말이오? 나랏일을 한다는 조정 대신들은 동네 왈짜들처럼 동인이다, 서인이다, 패거리 지어 쌈질이나 하고, 임금이라는 위인은 백성들이 피죽이나 먹는지 마는지, 왜 고향을 떠나는지 관심도 없으니, 참으로 성군이시지!” (108~109p)

물론 소설 속에 등장하는 대화는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졌겠지만, 이 책의 배경인 조선시대를 넘어 늘 새겨둬야 할 대목도 있습니다.

“민란이 일어난다면 그건 왜변에 대한 방비 때문이 아니라 공평치 못한 군역과 조세 제도 때문입니다. 양민들은 면포 몇 장을 내지 못해 해마다 반년 남짓 군역과 노역을 지면서 힘겨운 공납과 전세까지 감당해야 합니다. 그에 비해 양반과 지주들은 어떻습니까? 면포 몇 장도 내기 아까워 향교에 거짓으로 등록해 군역을 빼고, 해마다 농작의 풍흉과 논밭의 비옥함에 있어서 그 등급을 속여 전세를 거의 내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럿만 바로잡으면 됩니다! 그리되면 축성 때문에 국고가 빌 일도 없고 민심이 성날 일도 없습니다!” (130p)

책을 읽다보니 어릴 적 MBC 인기 드라마였던 <조선왕조 오백년>을 본 기억이 났습니다. 당시엔 그저 거북선이 일본군을 무찌르는 부분을 재미있게 본 것일 뿐이겠지만, 알게 모르게 제 안에 역사에 대한 관심을 키웠을 거라 생각합니다. 역사적 사료에 근거한다면 영상매체나 문학적 상상력이 더해진 역사소설이 역사적 지식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징비록의 ‘징비’란 ‘시경’의 “여기징 이비후환(予其懲 而毖後患): 내가 그 읽을 겪은지라 뒤에 올 환란을 삼가노라”라는 구절에서 따온 말이라고 합니다. 등장인물들의 대화가 중심이 된 빠른 전개로 소설 자체가 가진 장점을 살리는 동시에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이해 또한 넓혀주는 책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류성룡이 왜 징비록을 썼는지 마음 깊숙이 느끼게 하는 책입니다.

책 권하는 냐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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