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태엽 오렌지 (Clockwork Orange 1971)의 비쥬얼 쇼크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71년작 영화인 시계태엽 오렌지를 뒤늦게 봤습니다. 동명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한 SF 영화인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SF하면 떠올리는 미래적인 이미지-번쩍거리는 은빛 미래도시,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생각하고 말하는 안드로이드 소녀같은 클래식 요소들. 최근 개봉한 투머로우 랜드가 대표적인 뻔한 SF적 이미지를 차용한 예죠-가 없습니다.

외설적인 팝아트 미술품들로 가득찬 공간(고양이 마담의 저택)은 아주 기괴하면서도 현대적으로 보이더군요. 생활감이 조금도 보이지 않아서, 어딘가 존재할 것 같지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가상 공간)을 효과적으로 나타내는 장치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깜빡했는데, 저는 이 작품의 해설이나 감독의 의도에 관한 글은 본 적이 없습니다. 순전한 제 감상일 뿐이죠.

주인공 알렉스나 그와 어울리는 여성들의 복장도 한몫합니다. 60년대를 휩쓴 유행은 바로 모즈룩이었죠. 소녀팬들을 자지러지게 하던 원조 오빠 밴드 비틀즈의 깔끔한 양복 차림과 커다란 눈과 마른 몸이 트레이드 마크였던 트위기의 발랄한 미니스커트로 대표되는 그 패션말입니다. 모즈룩은 지금 그대로 입어도 촌스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시대를 앞서 나간 현대적인 복식이라, 수트를 입은 알렉스를 보면 40년도 훌쩍 넘은 옛날 영화로 느껴지지 않더군요. 요즘 (약간 레트로한 컨셉으로 찍은) 화보라고 해도 속아넘어갈 지경입니다.

전반적으로 이 영화는 시대추정을 모호하게 만드는 느낌이 있는 것 같습니다. 90년대엔 여주인공들에게 짙은 갈색 립스틱을 꽉꽉 채워 바르게 했고, 80년대는 빠글거리는 퍼머 머리를 포니테일로 틀어올려 이마를 가로지르는 끈으로 묶고, 형광색 에어로빅복을 입혔던,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 영화 혹은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시대를 가늠하게 하는 정형화된 시대적 특징이랄까 도식이 없는거죠. 분명히 알렉스나 친구들의 덥수룩한 장발처럼 촌스러운 데가 조금도 없진 않아요. 하지만 밀크바에 놓인 여성의 나체를 본딴 테이블처럼 아주 놀랄 정도로 현대적이기도 한 소품들이 동시에 혼재돼어 있어요.

새하얀 옷을 입은 알렉스 일당들이 설치고 다니던 검은 밤으로 대표되는 모노톤의 이미지와 온갖 형광색들이 어지럽게 흩어진 팝아트 그림들은 서로 섞이지 않고 각자 주장하면서 강렬한 시각적인 충격을 제게 남겼습니다. 화려하지만 세련되게, 레트로하지만 현대적으로 이러한 서로 상충하는 조건을 요구하는 클라이언트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는 디자이너들의 토로가 SNS에서 인기를 얻은 적이 있죠. 저는 그 게시물을 다시 보면 아마 이 영화를 떠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 그 까다로운 요구를 만족시키는 영화였으니까요. 시각적인 면에 치중해 이야기를 했지만, 영화의 스토리적인 면도 아주 좋았어요. 범죄자의 인권, 다수(사회)를 위한 소수(개인)의 희생은 과연 용인될 수 있는가? 등등의 묵직한 화두를 던져주는 생각하게 하는 영화. 원작과는 결말이 다르다고 합니다만 오히려 저는 감독이 바꾼 영화의 결말이 마음에 드네요. 역시 걸작은 걸작인 이유가 있더군요. 혹, 아직 안 보신 분 강력 추천합니다! P.S. 19세 미만은 보시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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