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은밀한 유혹>은 작년 10월에 개봉이 예정된 작품이었다. 정확히 어떤 연유로 계속 개봉이 밀리다 지금에서야 공개된 것인지 내부 관계자가 아닌 이상 알 수 없다. 하지만 CJ E&M이 생각했을 때 관객에게 잘 먹힐 것이라 판단했다면 이렇게 개봉을 미루고 미루지는 않았을 것이다. 출연 배우들만 봐서는 왜 이렇게까지 개봉이 지연됐는지 납득하기 힘들 수도 있다. 임수정 유연석 그리고 한국영화 KS 인증마크 이경영이 뭉쳤으니 꽤 괜찮은 라인업이다. 하지만 이들이 풀어나가는 이야기는 시놉시스 한 줄만 봐도 물음표가 붙게 된다. 이경영이 엄청난 재산을 가진 마카오 재벌인데 유연석은 어떤 사연을 가진 그의 양자 같은 존재고, 그런 유연석이 이경영의 재산을 노리기 위해 임수정에게 제안을 한다. 이경영의 간병인이 돼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후 유산을 상속 받으라고. “나에게 이런 짓을 한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라는 클리셰에 따라 이경영은 임수정에게 반하게 되고 결혼도 한다. 진부하기 짝이 없는 스토리인데다 원래 구멍이 많을 수밖에 없는 클리셰다. 이런 요소를 덮기 위해서는 주조연 배우들의 쫀쫀한 연기와 스릴러에 대한 연출자의 감이 좋아야 하건만, 배우와 연출자마저도 이 통속적인 이야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스크린을 뚫고 관객에게도 전해진다. 유연석은 끝까지 대사가 입에 붙지 않고, 이경영은 관성으로 회사를 다니는 영혼 없는 직원 같고, 임수정은 무언가 열심히 하려고 하나 아무도 그녀를 받쳐주지 못한다. 박철민, 도희를 비롯한 조연 배우들의 문제는 더 심각하다. 한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로 보이지 않을 만큼 따로 논다. 감독은 시나리오를 그냥 화면에 옮겨놓기만 한 것 같다. <은밀한 유혹>처럼 긴장감을 조성하는 테크닉이 관건인 작품에서 말이다. 그나마 후반부에서는 쫓고 쫓기는 추격씬이나 작심한 듯이 보여주는 반전이 등장하기는 한다. 하지만 관객의 예상을 벗어나지는 못하고, 스릴러적 상상력도 너무 부족하다. 특히 부엌에서 벌어지는 몸싸움(?)은 유사한 작품을 꼽아보라고 하면 당장 생각나는 것만 몇 편일 정도. 진부하기 짝이 없는 영화를 견디며 딴 생각을 하다가 이런 결론까지 나왔다. 임수정은 원래 <우는 남자>의 출연을 고민하다 <은밀한 유혹>을 선택했다. <우는 남자>의 완성도를 생각하자면 훗날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당시에는 상상도 못했겠다만, ‘차라리’ <우는 남자>에 나오는 게 나았을 수도 있겠다. 그나마 <우는 남자>의 김민희는 자신의 매력을 뽐낼 만한 순간들이 있기는 했다고! 그만큼 <은밀한 유혹>의 완성도는 처참하다. 임수정, 오랜만의 복귀작이 참. 유연석, 몇 번째 실패작인 거야! 이경영은... 다른 작품 또 나오시겠지, 뭐. 진짜 문제는 볼 만한 작품은커녕 갈수록 하향평준화 되고 있는 한국영화의 퀄리티다. 진짜, 어떡하지? 2015년 6월 4일 개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