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케티 비판: 에르난도 데 소토의 경우

피케티를 비판하는 글은 차고 넘치기 때문에 잘 골라야 하는데(참조 1) 그를 제대로 비판하려면 아무래도 그의 근본적인 주장을 “논리적으로” 비판해야 한다(대부분의 경우 기대에 못 미쳤다). 불평등이 심화됐으며, 심화된 불평등이 세계의 불안정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을 뒤흔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고 보니 나는 소개 글 외에는 쓴 게 별로 없다(참조 2).

지금 소개하는 페루의 경제학자 에르난도 데 소토의 글은 얼핏 보면 피케티의 주장과 별 관계가 없는 주장을, 그러니까 별로 들을 가치가 없는 주장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제목이 그의 말을 호도한다고도 볼 수 있을 텐데, 피케티가 워낙 유럽/미국 데이터만을 싸고 돌았기 때문에 전세계의 상황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맞겠네. 실제로 피케티 책을 보면 19세기 영국과 프랑스의 데이터가 중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잖나라는 생각도 동시에 들 것이다. 이 양반 통계도 모르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19세기는 선진 산업국들(결국은 영국과 프랑스다) GDP가 전세계의 거의 절반을 차지했으니 그들을 위주로 해도 별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다. 데 소토의 글을 잘 읽어야 한다. 그는 사유 재산권의 확립, “투명성”을 담보한 상태에서 비-제도권 경제의 제도권화를 이뤄야 자본주의를 발달 시킬 수 있다는 주장을 평생 해왔던 인물이고, 여기서 생각 못 했던 참신한 소재를 소개했다.

스스로를 불사름으로써 아랍의 봄을 일으킨 튀니지의 무함마드 부아지지가 실제로는 노동자가 아닌, 소자본가였다는 얘기다. 즉, 자본이 불평등하게 배분돼서 세상이 불안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본을 얻기 위해서 세상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자본이 많아서 문제가 아니라, 자본이 없어서 문제라는 의미다. 이는 노동과 자본을 굳이 분리해야 할 이유가 있냐는 근본적인 의문으로 이어진다.(참조 3)

즉, 제목만 보고 의미 없는 비판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곱씹어 보면 아예 게임의 장을 바꿔버리는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 서구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제기할 수 있는 주장일 것이다. 데 소토의 논문이나 책을 안 읽어서 더 깊은 말은 할 수 없겠다만, 경제학이 갈 길은 아직도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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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1. 사실 대중에 제일 잘 알려진 비판은 FT의 Chris Giles가 제기했던 데이터 에러일 텐데, Giles의 주장은 피케티도 피케티이지만 동료(...) 잡지 Economist가 Giles를 대차게 깠었다 (http://www.economist.com/blogs/freeexchange/2014/05/inequality-0).

2. 토마 피케티, 21세기 자본(2014년 4월 25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2330005844831

3. 이렇게 하면 상위 1%와 하위 99%를 나누는 분석의 틀 자체가 깨진다. 불평등이라는 개념 자체를 다시 정의 내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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