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빨강
박성우
몰랐니? 너랑 나는 빨강, 새빨간 빨강이야
빨강이 없었으면 우린 태어나지도 못했지, 생각해 봐
엄마의 새침한 빨강과 아빠의 힘센 빨강
아, 은밀하게 아, 뜨겁게 아아, 숨 가쁘게
빨강과 빨강이 새빨갛게 겹치지 않았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 세상에 올 수 있었겠니?
빨강이 빨강으로 새빨갛게 번지지 않았다면
너와 내가 어떻게 지독한 사랑에 빠질 수 있었겠니?
우리는 빨강, 새빨간 빨강이야
그러니 우린 언제나 빨강에 감사해야 해
우리가 첫 월급 타서 빨강 내복을 사는 건
엄마 아빠의 빨강에 고마워할 줄 안다는 철든 인사!
빨강은 앵두처럼 새콤하고 딸기처럼 달콤해
빨강에선 또각또각 경쾌한 하이힐 소리가 나
빨강은 두근두근 통통 튀어, 우리에게 와
그러니 너도 둥글려 봐, 빠알강 하고 빨강을 둥글려봐
빨강에 들어있는 동그라미를 둥글려 꺼내봐
참 잘 했어요, 오늘 하루에도 빨강 동그라미를 쳐봐
주저할 거 없어, 추기경님도 빨강 옷을 입어
스님의 장삼자락에도 빨강이 새빨갛게 걸쳐져있어
빨강은 신성해, 빨강은 열정 빨강은 사랑
빨강은 혁명, 우리에겐 혁명이 필요해!
지루한 일상을 멋지게 한판 뒤엎을 빨강이 필요해
빨강은 네 안의 발랄한 끼야, 그러니 좀 튀어도 괜찮아
빨강은 우리를 세상에 오게 한 새빨간 빨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