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우울증, 어째서 생겨날까? (上)

신종 우울증, 가벼운 우울증이 늘어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다양한 원인이 있겟지만 근본적인 부분에서는 과거에 비해 불안의 본질이 달라졌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과거의 우울증 환자들이‘수명’에 대한 집착과 불안을 보였다면, 신종 우울증 환자들은‘존재’에 대한 불안을 보인다. 이는 달라진 사회 분위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경제가 어려웠던 지난 세기, 사람들은 불분명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다. 하지만 고도 성장기에 태어나고 자라 더 이상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젊은 세대는‘나는 누구인가’‘내 인생은 과연 가치가 있는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불안의 자리가 생존에서 실존으로 넘어간 것이다.

원인1: 중병을 잡고 잔병은 늘린 사회의 심리학화

실존의 불안은 자아 정체성과도 연결된다. 지난 세기까지 자아와 실존에 대한 질문에는 종교와 사상이 그 답을 마련해 주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심리학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다양한 사회현상이나 사건에 심리학적인 설명을 추가하는 것을 사회의‘심리학화’또는‘심리주의화’라고 한다. 이는 인간을 이해하는 기본 구조로서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을 참조하는 경향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청소년이 상식을 넘어서는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을 때, 정신과의사나 심리학자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이다.

사회의 심리학화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우선 성격 분석, 행동 분석 등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가벼운 심리학 서적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단골로 오르내렸다. 트라우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자아정체성과 같은 심리학 전문용어도 일상적으로 사용되었다. 트라우마 치유를 테마로 한 에세이나 소설이 대중적 인기를 모으고, 영화와 만화, 대중음악의 주제가 되었다. 문학에서 등장하는 트라우마를 예로 들어보자. 심리적 외상, 상처를 뜻하는 트라우마는 허구의 작품에 현실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그것을 읽는 개인의 실존적 욕망을 충족시켰다(“그/그녀/내가 저렇게 된 것은 어릴 적 사고로 생긴 트라우마 때문이었어!”). 내면에 감춰진 트라우마는 매우 현실적인 주제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고 곧 일반화되었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자아를 설명하고 보충하는 말에는 다양한 심리학 용어가 수놓여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어린 시절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시달렸지. 자라면서 극복하긴 했지만 아직도 트라우마가 남았어.”그러나 실존적 고민은 심리학적 지식에 의해 해방되기보다는 오히려 보강되었다. 오늘날 마음 치료 산업의 열렬한 소비자로 젊은이의 수가 급증했다는 사실이 그 증거다. 하지만 치료는 이렇다 할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이들은 이미 미디어를 통해 심리학적 언어와 사고방식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눈치 빠른 사람이 되어버린 그들에게 형식적인 정신요법은 아무 소용없다. 신종 우울증이 가볍지만 낫지 않는 경향을 띠는 데에는 이러한 사정과도 관련되어 있다.

물론 심리학화 풍조에도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경증화’가 대표적인 예다. 우울증의 3대 망상으로는 심기망상, 빈곤망상, 죄업망상이 있다. 심기망상이 자신이 암 같은 중병에 걸렸다고 믿는 것이라면, 빈곤망상은 자신이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죄업망상은 중대한 죄를 저질렀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는 증상을 말한다. 이 가운데 심기망상은 지금도 가끔 발견되지만, 나머지 두 망상증은 최근 10년 동안 거의 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심리학화는 어떤 경로를 통해 증상을 가볍게 만드는 것일까? 역시나 미디어의 영향을 지나칠 수 없다. 그동안 만화, 게임, 장르 문학, 영화 등 하위문화를 중심으로 망상이나 광기를 표현하는 일이 일반화되었다. 이는 일종의 예방접종처럼 정신적 이상이나 폭주를 진부한 이야기로 만들어버렸다. 사회의 심리학화가 광기의 독성을 중화시켜버린 것이다.

스크리닝(screening), 즉 검열 기능도 무시할 수 없다. 젊은 세대는 그들끼리 공유하는 은어와 신조어가 있고, 그런 말들이 튀어나오는 장소에서는 커뮤니케이션 공간의 균질성을 흩트리면 안 된다는 무언의 압력이 작용한다. 그리고 이 압력은 예기치 않게 폭발하는 사소한 광기에도 반응하는 예민한 스크리닝 장치로 기능한다. 이러한 검열 기능은 타인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스크리닝은 자기 자신에게도 작용해서 배아 상태의 광기를 발견하는 즉시 제거하거나 치료해버린다. 이처럼 사회의 심리학화는 한편으로는 광기를 진부한 것으로 만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를 감지하는 센서를 예민하게 만든다. 이렇게 저렇게 해독되고 걸러진 광기는 가볍고 안정적인 형태로 외부에 표출되는 것이다.

원인 2: 지쳐버린 사람들과 조울증

또 한가지, 오늘날 심리학화와 맞물려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면모가 바로‘조작주의’다. 인간은 건강하게 잘 살기 위해 효율적으로 자신을 조절하고, 할 수만 있다면 타인까지도 조절하기를 원한다. 자기계발과 경제·경영 분야에서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상대방의 속마음을 읽어내는‘콜드 리딩(cold reading)’이나 성격 진단법이 유행하는 이유는, 타인을 마음대로 움직인다면 삶의 효율을 높일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자신과 타인을 조절하려는 욕망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유사 이래 조작에 대한 욕망이 이토록 강렬한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정신과 의사 우쓰미 겐은 《우울증 신시대》에서 가벼운 우울증이 증가한 이유를 흥미로운 관점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우울증은 가벼워진 게 아니라, 우울상태와 흥분상태를 동시에 갖춘 양극성 장애(조울증)가 증가하면서 가벼워 보일 뿐이다.

권위나 도덕, 규범처럼 절대적인 가치관을 따라야 하는 과거와는 달리 동기, 진취성, 자율이 지배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사회로의 전환은 그동안 옳다고 믿었던 가치관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과거의 성인 우울증이 그런 가치규범에 대한 압박에서 비롯되었다면, 신종 우울증은‘스스로 모든 걸 해야 한다’는 부담과 그로 인한 탈진에서 비롯된다. 우쓰미 겐은 신종 우울증의 발병 메커니즘을“규율이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상대방이나 상황에 맞춰 행동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개인은‘자기 자신’으로 존재해야 하는데, 이 간극이 우울증을 발생시킨다”고 분석한다. 다시 말해, 현대인들은 행동을 지배하는 절대적인 기준이나 비전이 없는 상황에서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쓰미 겐은 이 같은 경향을‘즉각적 강박’이라고 했다.

최종 목적이 없어진 개인은 이제 조절이나 적응 자체를 목적으로 삼게 된다. 이는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더욱이 장기적인 목표가 없는 상태는 현재의 위치도 불안정하게 만든다. 이런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 피로가 쌓이고 결국 탈진하게 된다는 게 우쓰미 겐의 설명이다. 즉각적 강박은 현대의 조작주의를 지탱하는 기본적인 심성이다. 더욱이 신종 우울증을 포함한 양극성 장애와 조작주의는 매우 결합력이 좋다. 흥분상태에서의 과도한 활동이나 우울상태에서의 은둔이나 무위는 ‘조작의 과잉’과 ‘조작의 결여’로 짝을 이룬다. 미친 듯이 일하거나 죽은 듯이 늘어져 있거나. 현대사회는 이 두 가지를 강요할 뿐 적당한 타협을 허용하지 않는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조작주의에서는 상대방이나 주변 상황을 조작하는 일 자체가 목적이 된다. 따라서 거기에는 본래의 이념도 목표도 없다. 젊은 세대의 우울증 환자는 종종 자신의 상태를 속이 텅 비었다고 표현하는데, 조작주의가 본질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목적과 가치의 결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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