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깡패 이야기입니다.
상애회가 숱한 폭력을 일삼고 반민족행위를 자행하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도 일부 보도됐다. 1924년 3월, 일제는 일본 내 친일단체를 결집해 ‘반일사상 박멸’을 내건 각파유지연맹을 발족시켰고 상애회도 이에 가입했다. <동아일보>에서 이를 비판하는 사설을 썼다. 격분한 박춘금은 <동아일보> 사장 송진우와 사주 김성수를 요정으로 불러 ‘우리 사업을 방해하는 놈은 죽여 버린다’며 폭행·감금했다.
감금된 두 사람은 ‘인신공격을 한 것은 온당하지 못했다’는 증서를 쓰고서 이틀 만에 풀려났다. 또한 같은 해 1~2월 박춘금은 상애회원을 이끌고 수 차례 <동아일보>를 찾아가 상애회 후원금을 내라며 행패를 부렸다. 당시 <동아일보>는 해외동포 위문금을 모금하고 있었는데, 그 금액이 10만 원에 이르렀다. 박춘금은 그 돈을 노린 것이다.
1928년 하의도 농민회를 박춘금과 상애회원이 습격한 사실이 <조선일보>에 크게 실리자, 박춘금은 일본 경찰 출신 일본인 비서를 대동하고 <조선일보> 한기악 편집장을 감금한 채 권총으로 협박하기도 했다.
일본과 조선을 오가며 날뛰던 박춘금과 상애회를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상애회 활동에 유일하게 제동을 건 사람은 의령 출신 독립운동가 안희제였다.
+모두 보기 http://www.idomin.com/?mod=news&act=articleView&idxno=483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