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갯털 같은 옷 한 벌

여자들이 무엇인가를 차 속으로 계속해서 던지고 있었다. 그것들은 무수하게 날아왔다. 몰개월 가로는 금방 지나갔다. 군가소리는 여전했다. 나는 승선해서 손수건에 싼 것을 풀어보았다. 플라스틱으로 조잡하게 만든 오뚜기 한쌍이었다. 그 무렵에는 아직 어렸던 모양이라, 나는 그것을 남지나해 속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작전에 나가서 비로소 인생에는 유치한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서울역에서 두 연인들이 헤어지는 장면을 내가 깊은 연민을 가지고 소중히 간직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미자는 우리들 모두를 제 것으로 간직한 것이다. 몰개월 여자들이 달마다 연출하던 이별의 연극은, 살아가는 게 얼마나 소중한가를 아는 자들의 자기표현임을 내가 눈치챈 것은 훨씬 뒤의 일이었다.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몰개월을 거쳐 먼 나라의 전장에서 죽어간 모든 병사들이 알고 있었던 일이다.

- 황석영 단편소설, "몰개월의 새" 중에서, <황석영 문학선 熱愛>, 1988, 나남 최명희 문학관에서 황석영 단편집 헌 책 한 권을 샀다. 차에서 읽다가 '몰개월의 새' 부분에서 울컥 삶이 목울대 부근까지 치밀어 올라왔다. 내가 읽어본 황석영의 텍스트 가운데는 가장 뭉클한 글이었다. '삼포 가는 길'도, <무기의 그늘>도, <심청 연꽃의 길>도 모두 '몰개월의 새'가 가진 울림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그의 초기작들을 읽고 있으려니 '황구라'의 연원이라 할 법 한, 섣부른 달관이 자꾸 거슬렸는데, '몰개월의 새'에서만큼은 그 어떤 허영도 없이 담백했다. 어쩌면 이 소설이 그의 진짜 대표작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어두운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 안에서 책과는 상관없는 엉뚱한 몽상을 했다. 누군가에게 옷을 해 입히고 싶어졌던 것이다. 병자처럼 희고, 농담처럼 가벼운 옷. 그리하여 지상에 매인 무거운 몸으로도 그 옷 한 벌이면 훠어이 훠어이 날아갈 수 있는 날갯털같은 옷을. 마음 둔 곳이 없는데, 자꾸 매어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책 읽을 때에서야 비로소 맘을 풀어놓은 한 때. 다시 생활이 일과 술과 책으로 단순해지고 있다. 이건 좋지 않은데.

아주 천천히, 그 누군가를 잊어버릴만큼 느리게 연애소설 읽는 노인.
Follow
4.7 Star App Store Review!
Cpl.dev***uke
The Communities are great you rarely see anyone get in to an argument :)
king***ing
Love Love LOVE
Download

Select Collec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