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하

'풍하', 바람 아래. 새벽 4시까지 여는 숱집은 드물다. 그만큼 그들은 적적하고, 한결 부드럽다. 거기까지 흘러간 이들은 이미 거나하게 취한 사람인데 군말없이 받아주고 소담한 상 차려준다. 천원 한 장 떼지 않는 정성으로 작은 술집은 한 명씩 손님을 받고 보낸다. 설아도 마찬가지였다. 몇 번 만남 남자와 이유 없이 술자리가 길어졌다. 이미 정량을 초과한지 오래. 하지만 술인지 모를 맛을 털어넣으며 설아는 계속 잔을 기울였다. 새벽이라 그런지, 단둘이라 그런지 알 수 없었다. 다분히 목적은 하나 섹스 하느냐의 문제로 가닿았다. 한 치 풀린 눈으로도 종운은 또렷하게 하나, 몸이라는 단어를 기억했다. 몇 번 만난 여자와 4차째 달리는 술자리. 등은 어둡고 주변은 한산하다. 알콜의 기운을 빌어 평소에 자위해온 한 가지에 집중하자면 살갗 그게 참 그리웠다. 집에서 올라와 자취 4년차, 몸붙임이 시급했다. 굳이 섹스가 아니라도 누군가 손목을 잡고, 몸을 감싸고, 부둥켜 안기를 원했다. 몸의 바람은 정직해서 매일 밤이 곤혹이었다. 불끈대는 남성만큼 가라앉는 마음은 어떤 자극에도 잦아들지 못했다. 오로지 사람, 사람의 살내음에 대한 그리움이 마냥 각인된 기억처럼 꿈 끝에 쫓아왔다. 그는 분명 지금, 혹독히 외로운 와중이었다. 이렇게 쓰면 마치 이것이 종운의 일인 것 같지만 실상 설아도 마지못한 척 술집까지 걸어온 셈이다. 아직 완전히 취한 건 아니었지만 분명 이끌림이 있었다. 그저 마음의 일이라 여겨왔으나 도리어 부정할 수 없는 눈길이 은근히 그의 존재를 인식했다. 회사에서 밝게 웃고, 야근하는 생활 속에서 해야 할 일이 참 많았지만, 어느새 한풀 꺾인 날개죽지만 파르르 떨며 간밤을 서려야 했다. 설령 처음은 쓸쓸함이었으나 그게 온몸에 퍼져 이젠 달뜨기에 이르렀다. 누군가 필요했다. 그런 부분까지 모른 척하는 게 오히려 가식이라 여길 정도로. 근데 모텔은 안 돼요. 몸과 마음이 이어질 찰나 새벽바람이 불었다. 종운은 운도 떼지 못한 일을 차인 기분이었다. 흐릿하게 쳐다볼 땐 언제고 이제와 꼬리를 감추는 건 무슨 심보일까. 변덕에도 상도덕이 있지, 지금은 그런 타이밍이 아니었다. 설아는 사뭇 단호해보였고 종운은 당황하면서도 풀죽어 시무룩했다. 어색해질 순간. 이제 집에 가야 하려나. 모텔만 아니면 돼요. 설아는 모텔에 낯익었다. 어렸을 때부터 프런트 너머로 온갖 사람이, 이름 없는 얼굴이 지나다니는 게 참 신기했다. 자기 집에 누군가 잠을 자러 온다는 것, 묵고 간다는 게 익숙해질 쯤, 남자와 여자가 오는 모습을 유독 바라보곤 했다. 괜히 멋쩍어 하고 쑥쓰러워 하는. 그럴 때마다 그녀의 어머니는 피식 웃었다. 이거 다 삼라만상 중에서 사람 일 그 뿐이라고. 털털하게 넘기는 배려에 죄진 표정마다 안심이 묻어났다. 설아는 그런가보다 했다. 사람들이 쉬쉬 하는 일이 너무나 자연스런 지금, 오히려 일부러 묻곤 한다. 모텔이 아니어도 좋은 곳, 그저 두 사람, 두 몸, 한 공간이면 족하다는 말, 필요하다고. 그렇게 당황한 상대를 설득도 해보고 이내 포기하고 오늘은 이만 물리자 말도 해보고. 여름 새벽은 일찍 일어나 눈 뜨길 채증했다. 술집도 여명따라 쉴 채비를 마쳤다. 애매하게 나오는 두 사람. 아쉬워하는 남자와 그에 못지 않는 여자. 허나 이 복잡란 도시에는 몸 섞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이미 혀부리로는 온갖 애무를 마친 상태로 늦은 퇴근을 하기에는 어설픈 순간을 어물쩡 넘기기 싫었다. 금기를 깨야 했다. 종운은 잠시 망설이다 창고는 어때요? 엉뚱한 질문 한다. 설아는 둥근 눈으로 잠시 생각한다. 후회하기도 잠시, 종운은 흔쾌한 승낙을 받았다. 종운이 운영하는 편의점 알바와 자리를 바꿀 시간이었다. 몸이 먼저든 마음이 먼저든 일단, 있는 생각을 없다 할 수 없는 새벽이 지났다. 종운이 서둘러 창고를 치울 동안 설아는 편의점 곳곳을 구경했다. 그에게는 일상이 스민 공간, 곧 입김으로 메우겠구나 짐작해본다. 그리고 이내 창고의 문이 열렸다. 2015.05.23 #쮼 #사진_박아란

잉여, 평범, 가난이 장래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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