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은 뮤지션에게 기회가 열려있는 땅

익숙한 힙합 비트에 몽환적인 전자음악을 입히고 거기에 날카롭지만, 약에 취한 듯 읊조리는 여성 보컬이 가미된 음악. 이런 음악을 서너 시간 연속해서 듣고 있자니 침대 속으로 몸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새 앨범 디셈버(December)를 발매한 르미르(Le MIR)의 리더 박희찬 한국폴리텍대학 디지털콘텐츠과 교수를 만나러 가는 길에 예습삼아 음악을 들어본다. 정말 장마철 창에 흐르는 빗물 같은 음악이다. 대전에도 이런 음악을 하는 사람이 있다니 의외다. 게다가 한없이 음침한 모습이라고 상상했던 인터뷰의 주인공이 덥수룩한 수염에 호탕한 웃음소리를 장착한 상남자라니. 이 남자. 나를 두 번 놀래준다.

15년만의 정규 1집 디셈버

트립합(Triphop, Tripped + Hiphop, 즉 ‘약에 취한, 몽환적인’ 힙합이라는 의미를 지니는 음악 장르로 힙합의 비트에 몽환적인 전자음악을 접목한 영국 브리스틀에서 시작된 음악이다. 국내에는 포티스헤드(Portishead), 메시브 어택(Massive Attack) 같은 밴드들이 알려졌다.) 밴드 르미르의 역사는 박희찬 교수가 캐나다에서 공부하던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박 교수는 1997년 대학원을 알아보기 캐나다로 날아간다. 영상 관련 대학원으로 진학하기 위해 밴쿠버에서 이곳저곳을 알아보던 어느 날 ROTC 1년 선배와 조우한다. 타국에서 아는 이를 만나 반가워운 것도 잠시, 중학생 시절부터 밴드 생활을 해오던 박 교수는 적적한 타향살이를 위로하고자 선배와 의기투합하여 밴드를 결성하기로 한다. 박 교수의 결심을 들은 선배는 악기사와 인디 레이블 ‘베어풋 레코드(Barefoor Record)’를 함께 운영하는 셰인스 월드(Shane’s World)를 소개했다. 이 곳 역시 운영자가 한국인이었기에 이들과 만남은 이역만리 캐나다에서 음악에 대한 열정을 다시금 활활 태웠다. 결국, 대학원 진로마저 영상에서 음악 레코딩으로 변경하는 일생일대의 큰 선택을 하게 된 박 교수는 2000년에 르미르라는 밴드를 결성해 시범적으로 브레스레스(Breathless)라는 타이틀로 음반을 발매하게 된다.

“캐나다에서 만든 음반은 정식 발매라고 하기도 민망한 수준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판매도 하지 못했고요. 그래서 저는 이번에 발매된 앨범을 정규 1집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시 발표한 곡 중에서 4곡 정도를 재녹음해서 수록하기도 했고요.”

15년간 쌓여온 음악은 차고 넘쳤지만 막상 음반 발매는 순탄하지 않았다. 이왕 음반을 제작할 거 제대로 된 유통을 해보고 싶었던 박 교수는 국내 인디레이블의 대명사 격인 ‘미러볼 뮤직’의 문을 계속 두드렸다. 계속된 거절과 좌절 속에 굴하지 않고 4번의 도전 끝에 발매가 결정됐다. 2000년부터 만들어왔던 수많은 곡을 이제야 세상에 선보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대전은 뮤지션에게 기회의 땅

캐나다에서 유학을 마친 박 교수는 한국으로 돌아와 ‘헤럴드동아TV’에 입사했다. 하지만 이 직장은 박 교수에게 제대로 된 즐거움을 안겨주지 못했다. “당시 케이블TV에선 음향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영상이라는 것이 대부분 그렇지만 음향보다는 그림에 더 집중한 거죠.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에선 영상편집까지 시키더군요.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다 보니 병도 많이 생기고, 결국 뛰쳐나왔습니다.” 이렇게 방송국을 나와 새롭게 둥지를 튼 곳은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이곳에서 레코딩 엔지니어 일을 하면서 차곡차곡 실력과 경력을 쌓아 나갔다. 그러던 중 2004년 폴리텍대학 교수로 옮길 기회가 주어져 대전으로 내려온다. 그렇게 대전에 정착하고 음악의 뿌리도 함께 내렸다. 박 교수는 대전에 대해 공간대비 활동한 곳이 상당히 많은 지역이라고 평한다.

“열심히 움직이면 오히려 서울보다 활동하기 더 좋은 곳이 대전입니다. 뮤지션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많으니까요. 라이브 클럽에선 연주할 수 있는 뮤지션이 없어서 올리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서울에서는 매일 밤 클럽에서 공연이 펼쳐진다. 하지만 대전은 겨우 일주일에 두세 번가량만 공연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아쉽다. 대전에 밴드가 부족한 것도 아니고, 서울 경기만큼은 아니지만, 팬들도 꾸준하다는 것이 박 교수의 생각이다. 대전 지역에서 밴드들의 활동이 활발하지 못한 것은 지역 관계자들의 문제도 있다고 꼬집는다. 지역 밴드들을 홀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일단 지난해까지 열심히 진행되던 ‘호락호락 페스티벌’이 올해부터 열리지 않는 것이 크게 아쉽습니다. 그나마 지역 밴드들이 서울의 밴드들과 함께 한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는데, 이마저 소리소문없이 사라져 버리니 대전 음악계가 일보 후퇴한 느낌입니다. 호락호락 페스티벌이 없어진 후 올해 새롭게 등장한 블루블랙 페스티벌은 좀 더 심각합니다. 이틀간 세 곳의 장소에서 열리는 이 음악 페스티벌은 ‘대전 뮤직 페스티벌’이라는 타이틀이 부끄럽게 라인업에 대전 지역 밴드가 전혀 보이지 않더군요(이 페스티벌은 메르스의 여파로 얼마 전 취소가 확정됐다 – 기자주).”

매년 KAIST에서 개최되는 음악 페스티벌 KAMF의 경우에도 대전 밴드들이 설 자리는 없다. 그냥 유명한 서울 밴드들을 섭외해야 장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지역 대중문화 시장을 더욱 암울하게 한다는 것이 박 교수의 항변이다.

“수도권 사대주의가 있는 것 같아요.”

매년 꾸준히 음반 발표할 것

박 교수는 CD야말로 뮤지션의 마지막 자존심이라고 여긴다. 어느 유명 개그맨이 “일주일에 하나씩 음원을 낼 수 있다“라고 말하는 사태가 바로 음악이 죽어가는 증거라며 답답한 마음에 소주잔을 들이킨다. 이런저런 이유로 그동안 만들어 놓은 음악과 새로운 음악을 섞어 매년 1장씩의 음반을 발표할 목표를 다졌다.

“음반 제작비는 열심히 활동하면 금방 매울 수 있습니다. 공연을 하면서 팔리는 음반의 양도 무시할 수 없어요. 다만 이런 일은 CD를 찍어 내야만 가능한 일이지만요.”

공연도 꾸준히 할 예정이다. 음반을 발매한 후 활동이 없으면 금세 잊힌다는 것이 박 교수의 철학이다. 하지만 현재 제대로 공연을 하고 있지 못해 애가 탄다. 좀 더 연습을 많이 하고 공연도 많이 하고 싶지만, 이런저런 여건상 준비만 하고 있다. 일단 준비가 완료되고 공연을 시작하게 되면 최대한 많은 활동으로 음악팬들을 찾아가겠다고 벼르고 있다.

르미르 1집 디셈버의 앨범 표지는 보컬 신수진 씨가 직접 촬영한 태국 방콕의 한 도로를 담았다. 갈림길이라는 것은 항상 사람에게 선택을 제공한다는 의미를 음반에 담고 싶어 표지로 택했다고 한다. 르미르는 15살의 나이가 있지만, 국내 팬에게는 아직 낯설다. 거기에다 팬층이 두텁지 않은 트립합 장르를 표방한다. 하지만 곱씹을수록 우러나는 깊은 맛이 있는 음악인만큼 박희찬 교수의 르미르가 대전은 물론 전국 음악팬들에게 충분히 선택받을 수 있다고 기대해 본다.

위 기사는 ‘대전문화재단 문화예술 서포터즈’ 사업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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