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빵은 그 자리에 있었네] 그 흔한 간판 하나없이 반백년 세월 견디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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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으로 가는 운주 17번 국도를 지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봤을 수 있겠다. 서금서금한 황토색의 미닫이문과 나무와 흙으로 단단히 지은 처마를 덧댄 신식 파란 지붕.

소리 없는 광음을 지나온 세월의 얼굴을 가진 이 곳. 50여 년 간 이 자리를 지켜온 수청마을의‘점빵’이다.

간판 하나 없지만, 이 곳이 ‘점빵’임을 알리는 단서는 여럿 있다. ‘담배’라 써 붙인 빛바랜 스티커와 작은 안내판, 그 옛날 달았을 빨간 우표 안내판과 ‘리폰표 마요네즈’라는 광고판. 그리고 그 앞에 덩그러니 놓인 색 바랜 플라스틱 의자 하나.

벌써 50년이 넘었다. 박동순(80.운주면 수청리)할머니가 이 수청거리의 이름 없는 점빵 주인장이 된 지.

“기억이 생생허지. 내가 6남매를 이 점빵에서 키웠는디. 안 해본 일이 없고, 안 팔아 본 것도 없어. 막걸리도 팔고 차표도 팔고, 아랫방도 내주고. 지금은 담비하고 애들 과자 같은 걸 팔지.”

운주군 구제리에서 나고 자라 금천으로 시집간 박 할머니는 25살 즈음 이 곳 수청리에 자리를 잡았다. 이사 온 집이 마침 ‘담뱃집’이었고, 박 할머니 부부가 그걸 이어서 했단다.

“다들 담배상회라 불렀어 여길. 점빵에 무슨 이름이 있나. 더 옛날엔 기냥 구판장이라 불렀지.”

시원한 걸 찾는 손님에게 그리 크지 않은 가정용 냉장고에서 차가운 음료를 꺼내준다. 집과 점방의 모호한 경계선이다. 당신 것인지 판매용인지 모를 모기약, 칫솔, 반창고, 소화제, 과자 몇 봉지 등. 가짓수는 많지 않아도 웬만한 건 다 있다.

“보름에 한번 정도는 운주 시내 큰 슈퍼에 가서 과자나 라면 같은 걸 사가지고 와. 이번엔 라면이 떨어져서 한 봉다리 사가지고 왔구먼.”

빛바랜 칠이 떨어진 선반 위, 딸기맛 웨하스와 짱구 과자, 그리고 김치라면 등에서 박 할머니의 취향이 드러난다.

이 수청마을 점빵은 마을의 다양한 역할을 해왔다. 물건을 파는 슈퍼마켓에서부터 막걸리를 파는 주막, 마을의 작은 터미널, 뜨끈한 잠자리를 내주는 숙소까지. 지금은 서너 가구 뿐인 동네지만 그 옛날에는 건너 건너 사람들이 많았다.

점빵 안, 박 할머니가 부엌으로 쓰는 공간은 지금은 싱크대가 들어섰지만 그 옛날엔 막걸리를 내주는 주막의 한 부분이었다. 찰랑이는 막걸리를 가득 담은 항아리를 땅 속에 묻어놨던 공간.

“우리 집 마당에서 막걸리 마시며 윷놀이하던 사람들이 얼매나 많았는지 알어? 아이고, 말도 못혀. 그야말로 바글바글 했당게. 그때 돈으로 막걸리 한 되가 250~300원 정도 했어. 동네에 사는 두부장사한테 두부를 사서 우리 집 김치하고 같이 안주로 내줬었지.”

당신 자신들도 형편이 좋지 않았지만, 인심 좋은 부부는 막걸리를 그야말로 퍼줬다.

“막걸리를 외상으로 먹고 계절 지나서 갚은 사람도 있었고, 몰래 먹고는 지금은 죽어버린 양반도 있어. 우리 집 아저씨가 인심이 좋았지. 외상값을 주면 받고, 안주면 말고. 다들 곤곤하게 사는 사람들이니께.”

충남 금산과 완주 경천면 사이에 위치한 지리적 위치 탓에 차부의 역할도 착실히 해왔다. 전주, 대전, 고산 등 각지로 오가는 사람들이 들리는 작은 터미널이었다.

“차 놓치고 발 동동거리는 사람들도 많았어. 아 글씨, 전주서부터 여까지 자전거를 타고 온 사람도 있었어. 충남 금산까지 간다는디 차비가 없다는 거지. 거즌 80리가 넘을거여. 그래서 그냥 차비를 줬던 일도 있었어.”

점빵 내 크게 붙여진 공중전화 안내 스티커에 대해 물으니 그 옛날, 박 할머니 본인이 마을의 ‘전화 안내원’ 역할까지 맡았단다.

“그땐 지금처럼 집집마다 전화가 있는 게 아니잖여. 부락마다 전화기가 하나씩 있었는데, 우리 동네에는 이 점빵에 놨어.”전화가 오면 박 할머니가 마이크로 동네에 방송을 했다.“‘어느 마을 누구씨 서울 자식한테 전화왔어. 전화 받으러 오셔’라고 마이크로 방송을 하잖어? 그럼 저 멀리 윗 동네서부터 전화 한통 받을라고 겁나게 뛰어와부러.“

저무는 해를 보며 ‘대략 5시쯤 됐겠다’며 시간을 점치는 박 할머니.

세월이 흘러가면서 점빵은 할 일을 점점 잃어가고 있지만, 이 수청마을 점빵에는 요즘도 지나는 사람들이 한번 씩 들린단다. 이 곳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있기에 점빵의 문은 여전히 열려있다.

“시골은 밤이 빨리 와. 옛날에는 사람 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니 무섭지 않았는데 요새는 해가 지면 무서울 때가 있어. 요즘은 점빵 앞으로 오가는 차 소리가 오히려 든든하지.”

점빵에 담긴 박 할머니의 사연은 간명하다. 재미난 취미이며,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소임이자, 한 평생이 담긴 인생이다.

“점빵? 여그가 옛날에는 내 일터면서 집이었지. 지금은 심심풀이로 하는 거여. 이 곳에 내 인생이 다 있거든. 지금보다 더 늙으면 이제 점빵 문을 닫것지. 그때까진 할라고.”

바깥쪽으로 난 점빵의 문을 열면 지금은 차들이 오가는 포장도로가 됐지만, 예전에는 흙먼지가 풀풀 날렸더랬다. 박 할머니 당신 자신이 이 점빵에서 바라본 50여 년의 세월이, 날리는 흙먼지처럼 오늘도 켜켜히 쌓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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