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7.10

인간이 최소한도로 삶을 수렴시킬 때는

머릿 속에 수 많은 스위치들을 하나 하나 내립니다.

청소 안해도 괜찮아. 툭.

머리 안 감아도 괜찮아. 툭.

수염 좀 길면 어때, 나갈 때 깎으면 되지. 툭.

더럽다는 건 주관적인 인식상의 문제일 뿐이야. 툭.

그렇게 조명이 꺼지다 보면 몇 개 안남고,

익숙해지면 인식 자체를 안하게 되죠.

그냥 보이지 않고 없는 것들일 뿐입니다.

요새는 예전에 끄지 않았던 것도

하나씩 하나씩 켜보고 있는데,

어떻게 첫 스위치를 올렸는지

저도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스위치들을 on, off식이 아니라

회전식 단추로 바꿔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상당히 어렵습니다만.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란 책에서

가난한 사람은 그저

자원이 부족한 사람으로 상정됩니다.

환경이니 본성이니 하는 이야기는 최대한 피하고,

단지 자원 자체가 없는 사람으로 바라보는 것이죠.

이 책은 가난에서 벗어나는 단계를

두가지 모형으로 그리고 있는데,

하나는 S자 형이고 다른 하나는 L자 형입니다.

L자 형의 경우 자원을

선형적으로 늘려갈 수 있다고 가정합니다.

즉, 아주 자원이 적다고 하더라도

적당한 투자를 거치면 조금씩 조금씩 늘리는

선순환이 가능하다고 가정하는 것이죠.

이런 가설은 가난은 사람들이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라 말할 근거가 됩니다.

반면 S자 형의 경우, 자원의 증가가 S를 그리는데

자원을 더 얻기에 어려운 지점과 쉬운 지점이 갈립니다.

말하자면 그 점 아래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자원을 투자해도

더 많은 자원을 절대 얻지 못하는 겁니다.

그 점의 위에 있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적은 자원의 투자로

쭉쭉 올라갈 수 있는 것이고요.

저는 이게,

감정 자원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생각할 때 부족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치해서

선순환을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어떤 지점 아래에서는

그런 선순환이 불가능한 때가 옵니다.

그럴 때는 결국 타자의/환경의 개입이 필요하죠.

자원이 적다는 것은

투자에 비례한 위험이 무지 크다는 것이고,

자원 배치도

덩이 덩이로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누가 홀로 거기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전 선형적인 발전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하기에

"내가 예전에는 말이야." 혹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란 말을 절대

하지 않으려 합니다.

수 많은 변수에 의해 다차원으로 나눠진 공간에서

누가 얼마나 일치할 수 있단 말입니까.

나의 고통 앞에서는

타인의 경험도,

일반론에 입각한 훈수도 다 부질없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무엇무엇을 위한 몇가지' 같은 류의

글 따위는 절대 눈에 들어오지 않죠.

smoove & turrell

now or never

https://youtu.be/OgfjeBLNi3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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