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 중식 목란] 목란에 대한 투정, 이연복을 위한 변명

이연복의 요리를 맛보고 나니, 

맛집이라는 것 그리고 한국식 중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하나. 목란의 음식 그리고 투정

목란에 대한 첫 인상은 자극적이지 않고 얌전한 맛으로 승부하는, 기본에 충실한 중국집이라는 것. 


특히 평범한 저가 식재료를 가지고 어떻게든 맛을 내려하는 노력이 돋보인다.


가격으로 치면 동네 중국집이지만, 품격은 그 이상이다.


우리 팀은 네 가지 요리와 식사로 구성된 1인당 25,000원 짜리 B코스에, 


해삼삼겹살찜(동파육 대체용)과 탕수육을 별도로 주문했다. 


대표메뉴 중에서 현장 주문이 가능한 것들을 코스에 붙인 나름의 최적화였다. 


가격은 1인당 37,000원 정도인 셈. 


일단, 전반적으로 비용 대비 매우 만족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식에 따라 질적인 편차가 제법 심했다.

굳이 평점으로 이야기하자면 ...


게살유산슬(A), 팔보채(D), 깐풍기(C), 크림새우(B), 자장면(B), 짬뽕(A), 해삼삼겹살찜(A), 탕수육(B) 정도 되시겠다.

우선 게살유산슬과 해삼삼겹살찜(해삼쥬스)은 수준급이다. 


게살유산슬은 게살을 계란 흰자에 따로 볶아 유산슬에 얹은게 인상적이며, 


해삼쥬스는 삶고 튀기고 찐 동파육에 잘 불린 건해삼, 


그리고 느끼함을 잡아주는 채소 카이란의 조화가 일품이다. 


과장되지 않은 굴 소스도 칭찬받을 만하다. 


두 요리 모두 센불로 재료의 신선함을 유지하며 불맛을 담는 볶음요리의 ‘기본’이 매우 잘 구현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란에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1) 치밀한 계획없이 자리만 예약하고 가면 이 집의 비교우위 메뉴를 먹을 수 없는

매우 이상한 시스템에 당황하게 된다. 


즉, 동파육, 배추찜, (심지어) 군만두, 새우완자찜 등 인구에 회자되는 목란의 대표 메뉴는 사전 예약 없이 주문 불가다.


(2) 음식의 전반적인 수준은 가성비의 함정을 벗어나지 못한다. 


즉, 최고의 중식은 절대 아니며 이 가격이면 매우 괜찮다는 것이다. 


나름 고급식당의 독립된 룸에서 25,000원~45,000원 짜리 저녁 코스 메뉴를 먹을 수 있는 곳이 대한민국에 또 있을까? 


그것도 이.연.복.목.란.에서!


그러나 아쉽게도 이 가격엔 좋은 재료, 특히 해물에 투자하기 어렵다. 


새우, 오징어, 해삼, 게살에선 질감을 빼면 별다른 맛은 기대하지 마시라. 


탱탱하긴 하나 아무 맛을 느낄 수 없었던 새우의 경우 크림새우보다는 양념 맛으로 먹는 칠리새우를 시키는 게 덜 억울할 것이다. 


그리고 매운 고추기름에 오징어 위주로 볶은 팔보채는 상당히 당황스런 맛이다.

(3) 튀김류가 지나치게 딱딱하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으나, 탕수육은 중국집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바삭함’과 ‘딱딱함’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우리 소비자 덕에, 


대부분의 요리사들은 딱딱한 튀김을 만드는 데 모든 정력을 쏟는다. 


그러나 튀김이 너무 딱딱하면 고기 맛을 느끼기 힘들다. 


사실 딱딱한 튀김은 그닥 어렵지 않다. 옥수수 전분에 여러번 튀기면 되니까. 그래서 공장제 탕수육 설, 리사이클 설이 솔솔 나오는 것이다.


매스콤에서 요란하게 떠드는 “한 시간이 지나도 딱딱함을 유지”하는 건 사실 잘 만든 요리라고 보기 어렵다. 


물론 목란의 탕수육은 기분 좋게 딱딱하다. 하지만 바싹하진 않다. 


탕수육은 그렇다 치고 깐풍기는 옷도 두껍고 지나치게 딱딱하게 튀겨져서 먹기 불편할 정도였다.

(4) 면의 탄력이 없다. 


국수를 뽑은지 오래되었나, 혹은 너무 바빠서 찬물샤워를 잊었나 ...  


밀려드는 손님 탓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오묘하게 깊은 국물 맛을 내는 짬뽕은 수준급이다. 


식당의 구조나 예약의 어려움으로 오로지 '완뽕' 만을 위해 다시 올 수 있는 여건이 

안된다는게 아쉬울 뿐.


둘, 이연복을 위한 변명 


목란은 다양한 화상 중식당이 경쟁하며 높은 가성비를 유지하고 있는 연희동에서 

이연복 셰프의 얌전한 스타일을 지키면서 단골 장사를 해야 하는 집인 듯하다. 


아마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손님이 와서 주문하면 그 자리에서 동파육도 내주고 군만두도 튀겨주며 손님과 정담을 나누다가, 


입가심으로 한번 드셔보시라고 배추찜 정도는 서비스로 내왔을 게다. 


양념도 세지 않으니 먹고나면 속도 편안했을 것이고.


그런데 먹방 쿡방 바람과 이연복 셰프의 독특한 예능감이 결합하는 바람에 목란이 뜨는 상황이 온 것이다.

이는 목란의 비즈니스 패턴을 변화시켰고, ...사장님의 고민이 시작되는 부분이 아닐런지.


오늘도 목란의 십 여개 룸은 착한 가격에 셀럽 세프의 음식, 


특히 매스컴을 타고 유명해진 몇 가지 요리를 영접하려는 20-30대로 차고 넘친다.


사실 목란은 쿡방을 지배하는 다른 유명 셰프의 레스토랑보다 월등하게 저렴하니, 세상에 이런 해방구가 없다!  


기존의 단골, 중식 매니아들은 자연스럽게 밀려난다. 


월초에 열심히 전화해야 다음 달 테이블을 잡을 수 있는 예약 구조로는, 


원하는 날 원하는 시간에 특정한 모임을 갖기가 이젠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제 목란에 오는 손님은 예약에 성공한 주선자와 그 주변 친구-동료일 가능성이 크다.


즉, 조금 다른 성격의 신세대 식객들이 이연복의 음식을 점령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손님의 절대 수는 늘어나지만, 주문의 비대칭성은 심화된다.


이들은 탕수육이나 유린기로 사진을 찍고, 

자장면 짬뽕으로 배를 불릴 것이다.

나쁘다는 건 절대 아니다. 그저 변화한 상황이 지배하는 현상일 뿐.


전화통에 불이나고 주차장은 미어터지지만, 

객단가는 낮아진다.


물론 총 매출은 오른다.더불어 투입요소도 증가하니 영업이익은 글쎄다.    


주방도 어렵다. 이런 저런 이유로 시간에 쫓기니 메뉴 개발이나 품질 제고가 어려워진다. 

고육지책으로 동파육과 같이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요리는 아예 한정해 놓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목란의 코스에서 대표요리가 빠질 수 밖에 없는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지 않은건지?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탕수육도 예약해야 할지 모른다.


셋, 한국식 중식의 이해  


세계적으로도 매우 독특한 한국의 중식에는 아주 큰 특징이 있다. 


중식의 질을 결정하는 건 자본 또는 화교 1-2세대 요리사의 공력이라는 것. 


(토종 한국인에게 가르친다고 되는게 아닐 수 있다!) 


그리고 한국식 중식은 차별과 핍박 속에 낯선 땅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화교 이민자들의 생존을 위한 전략적 산물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정부는 물가관리 명분으로 자장면을 서민 음식으로 지정해 가격까지 통제하기도 했다. 


오늘날 파스타와 자장면의 어이없는 가격 차이가 발생한 기원이기도 하다.


이러한 배경이 매우 독특하고 기형적인 한국식 중식 문화를 만들었는데,


요리와 밥/국수가 구분되어있는 이 땅의 식문화에 적응한 한국식 중식은,


고가의 요리와 저가의 식사(면과 밥류)로 이원화 된다.


그렇게 탄생한게 한 그릇 가득한 짜장면과 짬뽕이고.


요리 접시 크기도 대형화 되었다. 하나라도 단가를 높여 팔아야 하니까.


영화에서 보듯이 본토에서의 중식 문화는 그저 '한 상' 이다.


최소한 사람 수 +1 만큼의 요리와 밥을 원판에 놓고 돌려가며, 시끌벅적하게 함께 먹는 것이다. 


각 요리의 양이 작고 가격도 그리 높지 않다. 그리고 남기는게 미덕이다.   


오늘날 요리를 순서대로 서브하는 중식코스도 어찌보면 한국화된 변형이다. 


물론 서양에서도 나름의 중식 현지화가 되어  각자 원하는 요리만 하나씩 시켜먹는 경우도 많다.


그리하여 한국식 중식은 다음 방식 중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1) 면 또는 밥만 단품으로 먹거나 (서민, 생계, 비즈니스형)

(2) 한 두가지 요리에 면 또는 밥을 먹거나 (친목형, 가족형)

(3) 코스를 먹거나 (접대형, 모임형) 

(4) 집에서 편히 먹거나 (배달민족형) 


넷, 목란에 잡아두고 싶은 시간


이제 업계 이야기를 좀 하자면, 한국형 중식당은 크게 네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A) 자본과 기술이 집약된 지존급 신라호텔 ‘팔선’과 더플라자호텔 ‘도원’, 

(B) 이제는 몇 집 남지 않은 연회형 대형 중식당 그리고 나머지 호텔들, 

(C) 화상 오너 셰프의 공력에 의존한 목란과 같은 내공있는 중소 중식당, 

(D) 배달 및 식사와 탕수육 정도로 나름의 포지셔닝을 하고 있는 동네 중국집. 


대개는 소시적 부터 A와 B에서 배운 화교 요리사들이 C로 자연스럽게 진입하여 창업하는 것이 20세기형 코리언 드림이었다.


10대 때 부터 양파까며, 온갖 설움을 참아낸 이들에겐 어느새 내공이 쌓이니...


이들이 주도하는 전국 방방곡곡의 C형 중화요리집에는  대표 음식(Killer Contents)을 비롯한 나름의 라인업이 있(었)다.

문제는 이런 오너셰프 중식당이 화교 1-2세대가 은퇴하면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 화교의 유입도 끊긴지 오래이고.


화교 요리사들의 회식 장소이자 깐풍게살과 전가복의 지존이었던 회현동의 ‘금정’,

난자완스가 좋았던 명동 '동해루',

공보기정을 제대로 선보였던 동부이촌동의 '홍보석' 

한 때 곰발바닥까지 맛볼 수 있었던 수원의 ‘동해장’ 등


이제는 모두 일기장 속의 추억이다.


그날 따라 유난히 땡기는 음식이 있거나 ‘수정방’이라도 한 병 생기면, 

전화 한 통 해놓고 찾아가던 일명 청요리집! 들이 사라져가고 있으니, 

...

참 아쉽다.


그래서 이연복이, 목란이, 연희동 중국집이 소중한 거다. 


샘킴과 최현석같은 셰프는 앞으로 얼마든지 더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연복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키워낼 수 있는 셰프가 아닐지도 모른다.  


이런 소중한 존재를 우리는 매스컴과 SNS 에서, 


그리고 목란의 주방에서 과잉소비하고 있진 않은건지 ... 곰곰히 따져볼 일이다.


마지막으로 이연복 셰프에게도 한 말씀드리자면,


탕수육 그만 하시고 좀 욕을 먹더라도 가격을 두 배로 올리고, 


제대로 된 라인업을 갖출 여유를 갖으시라고 권하고 싶다. 


그래도 쟁쟁한 사부님들에게 전수받은 노하우와 풍부한 경험을 갖춘 몇 안 남은 국가대표 중식 셰프 아니신가. 


*    *    *


기회가 되면 목란에 다시 한 번 방문할 날을 꼽아본다. 


아직 먹어보지 못한 새우완자찜, 동파육, 유린기, 배추찜, 군만두 등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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