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샘

어쩌다 며칠, 밤샘 작업(또는 밤샘에 가까운)을 했다.

결과는 그닥 좋지 않았지만 이런 밤샘 작업 자체가 아주 오래간만이었다. 기분이 묘했다. 몇 년 전 제주에서 살았던 때도 생각나고. 나는 원래 밤샘 작업 같은 건 전혀 하지 않는다. 밤샘이 필요한 회사는 다니지 않거나 그만 두고, 갑자기 밤샘 작업이 필요한 경우가 생기면 단 한번만 예외를 허용하고 그 보상을 몇 배로 받는다. 밤샘은 사람에게 맞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노후를 미리 땡겨 쓴다. 그러나 회사가 아닌 한, 개인적인 일로 아주 가끔, 밤샘이 필요한 때가 있다. 아, 술 먹는 일 말고 말이다. 밤샘은 사실 아주 안쓰러운 일이다. 모자란 시간을 한꺼번에 벌충하고자 몸과 마음, 머리를 한꺼번에 학대하는 일이다. 밤샘은 기적을 창출하지 않는다. 다만 몸을 상하게 하고 생명을 단축시킬 뿐이다. 밤샘작업을 계속해 이어가야 하는 일이라면 그만두는 게 좋다. 그것은 어디에도, 누구에도 도움이 안 된다. 이번 밤샘에서 나는 체력의 한계, 지적인 한계를 경험했다. 그것은 내게 숙제를 줬다. 내가 쌓아가야 할 것이, 미뤄둔 수업이 많다는 뜻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개인의 숙제이고 한계라면, 그건 고마운 일이기도 하다. 나침반이고 지도가 되어주는 것이니까.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는' 시대 같은 건 없다. 없었고,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스스로 별이 되는 수밖에 없다. 없는 길만이 진짜 길인 것이다. 요 몇 년 간, 내가 원하는 일들은 모두 이루어졌다. 거짓말 같지만 실제 그랬다. 그렇지만 지금 그 몇 년 간을 되돌아보면, 내가 바란 것들은 아주 비루한 것들이었다. 현재는 과거의 연장선 상에 있다 (과거가 현재의 연장선 상에 있는 것처럼).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단절인 것도 같다. 요 몇 년 간 내가 꺼내 쓸 수 있는 것들은 몽땅 꺼내 썼다. 돈 말고는 전부 다. 겉으로는 멀쩡하고 그럴 듯 해 보이지만 완전히 거덜난 것이 내 삶이다. 딱 하나, 보는 눈만 말고는 모두 수준 이하로 떨어졌다. 뭐 사정이야 뻔한 것이니까. 밤샘 작업 이후로 어떤 일이 생기든, 내가 해야 할 건 아주 명확해 졌다. 내가 앉아야 할 의자가어떤 것인지도 아주 또렷하게 보인다. 총체성 같은 것은 목표가 아니고 결과다, 추구해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앞으로 내가 해야 할 공부도 기술적인 종류의 것이 아니다. 인생의 절반을 살고서야 선배들이 왜 그렇게까지 성실을 강조했는지 알게 됐다. 그것이 결국 최고의 재능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전에 세상이 커뮤니티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여럿에 영합하기 보다는 개별적 준거 집단과 화합하면 되는 것이라고.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세상은 커뮤니티조차 아니다. 삶은 내게 주어진 시간을 절실하게 살아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의 이론>은 부분적으로 옳다. '세상(세계)는 무한히 광대하지만 마치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아늑한데 왜냐하면 영혼 속에서 타오르는 불꽃은 별들이 발하는 빛과 본질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나다. 밤을 새면서 내가 본 것은 그와 내가 경계가 없다는 것이었다. 잠시 동안, 그 경계가 없는 그러니까 내 자신의 확장인 세상에 문을 다는 게 좋겠다. 모르는 사람처럼 따로 살자. 그래봐야 어차피 너는 나니까. 밤샘 작업은 끝났다. 곧 계절이 바뀔 것이고 눈도 내리고, 세상은, 아니 나는 한 살을 더 먹을 것이다. 단절은 성장이다. 나는 아주 간절히, 끊어지려고 하고 있다. 그럴 수 있을지 아닐지는 내가 판단하지 않는다.

단절도, 성장도, 변신도, 다 결과일 뿐이니까. 그것은 목표로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니까.

아주 천천히, 그 누군가를 잊어버릴만큼 느리게 연애소설 읽는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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