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익,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사람은 노동을 통해서 사람이 된다고 하는데, 고역은 사람을 삐뚜러지고 잔인하게 만들어왔다고 생각해요. 노동의 고역에 오랫동안 시달려온 사람들은 일 자체를 부정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식들은 일을 시키지 않겠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자식들은 사무원, 공무원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일을 변화시켜 노동의 고역(비지땀 흘리며 하는 일)에서 벗어나게 하자는 게 아니고 나와 내 자식만은 일을 시키지 않겠다는 것은 극히 이기주의적인 발상입니다. 일을 변화시키는 일이 생활을 변화시키고 삶의 방식과 태도를 변화시켜 결국은 자신과 세상도 변화시키는 기초가 될 수 있지 않느냐 생각해 봅니다. 세상을 그대로 두고 사무직 아니라 사십무직을 한들 그게 그리 신통하지 못할 것은 시골에서 서울로 간 사람들이 별로 큰 수 내지도 못한 것에서 봅니다. 노동이 제자리를 차지할 수 있도록 하자는 노동이 곧 사회적 실천이고 새 세상 만들기 운동이겠지요. 이것은 노동을 거부하고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듭하는 말입니다만 노동의 고역에서 벗어나 노동 과정 자체도 즐거워야 하고, 그 결과도 흐뭇해야 합니다. 다시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날 수 있는 신나고 즐거운 인생이라고 떳떳하게 느낄 수 있는 그런 일을 해보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일이 크게 둘로 양분되어 정신 노동, 육체 노동으로 나누어졌는데 이것도 빨리 어우러져야 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역시 경독耕讀의 일체화라고 여겨요. 참된 경耕은 독讀을 필요로 하며, 독讀도경耕을 통해서 심화되고 제 구실도 할 수 있겠지요. 방에 틀어박혀 책상 붙들고 앉아서 천하명문이 나온다면 천하는 무색해질 것입니다.

- 전우익,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중에서 세상은 이제 1차산업의 생산물로 가치와 재화를 생산하는 단계를 넘어섰다. 수요가 공급을 창출하지만도 않으며 공급이 새로 수요를 창출하고, 또한 소비가 생산을 새로 만들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노동을 변혁한다는 것은 그전의 방식처럼 한 국가단위에서 파업을 일으키고 공장과 지역의 노동자들끼리 단결한다는 문제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노동의 과정을 노동자 착취 없이 만들 것이고 그 결과물의 분배를 직접 생산에 참여하는 이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할 것인가. 자본의 차별 뿐만 아니라 노동자 내부의 차별과 양극화 속에서 노동의 다양성을 존중하면서도 너나없이 서로를 챙길 수 있게 만들 것인가. 계급은 중요한 기준이며 선명한 리트머스 시험지이지만 지금 계급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 설득할 수는 없는 것은 아닌가. 최근에 읽는 책들이 모두 소수의 선택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나는 그로부터 어떤 최소단위를 만들 것인가. 일하는 것과 공부를 어떻게 서로 묶을 것인가. 책상 머리에 앉아 근사한 레토릭을 짜내려고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책읽기 만으로 모든 준비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내 어리석음은 어떤 몸으로 바뀌어야 깨칠 수 있는 것일까. 전우익 선생이 옳다. 가장 작은 노동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주 천천히, 그 누군가를 잊어버릴만큼 느리게 연애소설 읽는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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