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 가장 먼저 청각, 그 다음엔 시각. 그리고 촉각으로도 온다.

후각으로도 비를 느낀다. 미각은? 흠..... 일부러 빗물을 마셔본 적은 아직 없다!

나는 비오는 밖으로 나갔다.

비는 구름이라는 젖은 솜에 미처 다 스며들지 못한 물방울처럼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비가 가로수의 나뭇잎을 경쾌하게 두드리는 소리, 빗물 웅덩이가 군데군데 보이는 보도에 닿으며 내는 노랫소리가 귀를 메운다. 여름의 비는 슬픔이나 하강과는 거리가 멀다. 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함, 찌든 때를 씻겨주는 깨끗함이 여름 비의 성질이다.

빗방울이 더욱 굵어지고 점점 잦아들었다. 구름이 스스로 녹아내리듯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득 빗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아졌다는 것을 느꼈다. 이상한 일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노래처럼 내리던 비가 어느새 은은한 배경음악처럼 흘러내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간격없는 빗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아득한 전설처럼 내리는 안개비가 산마루를 자욱하게 감싸고 있었다. 수천, 수만의 물방울들이 거대한 장막을 이루며 바람따라 천천히 물결지고 있었다. 그 광경에 내 의식의 끝자락마저 촉촉히 젖어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내가 보는 모든 세상이 젖어들어가면서 더욱 선명해지고 있었다. 평소 담갈색이었던 흙도 비에 젖어 그 빛이 짙어져 있었다. 건물을 이루던 붉은 벽돌도 빗물을 머금어 그 붉은빛을 더욱 선명히하고 있었다. 보이는 것 뿐만 아니라 냄새도 선명해져 있었다. 향긋한 풀내음, 허무한 하수구 냄새도 짙어져 있었다.

그리고... 내 마음도 젖어들어가며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감사하는 마음, 그리워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들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리고 너무 자주 끄집어내 이젠 닳아 희미해져버린 기억들도 이 순간만큼은 짙어진다. 비릿한 후회와 지나간 아픔이 주는 묘한 안도감이 촉촉하게 가슴속에 스며들기 시작한다.

한동안 가만히 서서 사무치는 감정이 흘러가버리길 기다렸다.

장마철임을 전 하늘을 통해 주장했던 먹구름도 수많은 빗물을 쏟뜨린 후 기세가 주춤해졌다. 끄무레했던 하늘이 하얗게 밝아왔다. 물 고인 웅덩이에 피어나는 비의 동그란 자국을 보고 난 후에야 알아챌 수 있을 정도의 여린 비가 내리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너무 늦었음을 후회하며 그제서야 우산을 거뒀다. 일부러 비를 맞아보지 않은 지 너무나도 오래되었다.

구름이 마지막 용력을 써보는지 다행히도 빗발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장대비가 아니지만 어떤가. 부슬부슬 내리는 비도 충분히 신선했다. 머리를 기분좋게 간질이며 비는 시원하게 내리고 있었다. 이 순간 비는 시각이 아니라, 촉각이었다. 비는 내 몸을 축축하게 적시며 흐르고 있었다.

아파트 주변을 두 바퀴 더 돌았다. 세상에나. 비를 피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니 이렇게나 홀가분할 수가. 발끝까지 홀딱 젖어버린 놈을 무엇이 더 비참하게 만들 수 있다는 말인가. 기분 좋은 체념이 은은한 미소로 번진다. 거기에다 우산도 들지 않아도 좋고 말이지.

밤비가 내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홍등가의 불빛이 아스팔트에 고인 빗물에 아련하게 반사되고 있었다. 물웅덩이에 반사된 가로등의 노란색 불빛이 떨어지는 빗방울에 이지러지고 있었다. 그런 풍경으로, 비는 도시에도 한 줄기 감성이 남아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검은, 혹은 검보라색 하늘에서 물이 똑똑 흘러내린다. 검은 먹으로 물든 하늘의 천에 미처 다 스며들지 못해 안타깝게 떨어지는 먹물 같았다. 어둠과 섞인 밤비에는 낮의 경쾌함보다 밤이 주는 안온함과 쓸쓸함이 더해져 있었다.

비는 강도에 따라 안개비, 는개, 이슬비, 가랑비, 보슬비 등등으로 나눌 수 있다. 물론 억수, 폭우, 맹우, 호우 등도 있다. 하지만 이름에서부터 느껴지듯이 아무래도 그런 강한 느낌의 비 보다는 잔잔히 내리는 비가 더 감성을 자극한다.

비는 모든 물이 그러하듯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가장 높은 하늘에서 가장 낮은 곳인 땅에서 흐르기에 물 중의 물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여러가지 비와 관련된 사전 검색어를 덧붙인다.

안개비 : 안개처럼 뿌옇게 내리는 가는 비. 연우.

는개 : 안개보다 조금 굵고 이슬비보다 좀 굵은 비

이슬비 : 아주 가늘게 오는 비. 는개보다 굵고 가랑비보다 가늚.

가랑비 : 가늘게 내리는 비. 세우.

보슬비 : 바람 없는 날 가늘고 성기게 조용히 내리는 비. 부슬비가 큰 말.

사우 : 실 사 - 실같이 가늘게 내리는 가랑비.

사우 : 비낄 사 - 바람에 날려 비껴 뿌리는 비.

미우 : 보슬보슬 내리는 가는 비.

억수 : 물을 퍼붓듯 세차게 내리는 비. = 억소나기.

폭우 : 갑자기 많이 쏟아지는 비

호우 : 줄기차게 내리 퍼붓는 비

맹우 : 세차게 쏟아지는 비

여우비 : 볕이 난 날 잠깐 뿌리는 비

비 : 대기 중의 수증기가 높은 곳에서 찬 기운을 만나 엉겨 맺혀서 땅 위로 떨어지는 물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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