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8월

빙글이 르몽드 링크를 못 잡아낸다. 링크: http://abonnes.lemonde.fr/m-actu/visuel/2015/07/31/dans-les-archives-magnum-plage-financiere_4702186_4497186.html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1969년 8월 8일 바캉스중인 프랑스인들을 촬영한 사진이다. 사진이야 그러려니 하는데 저 신문의 제목이 딱 눈에 들어온다. “평가 절하, 무슨 일이 일어날까?”

때는 1969년, 1968년의 난리법석이 일어난 직후의 퐁피두 정부(샤방 내각)는 1968년 시위의 여파로 인해 “새로운 사회(Nouvelle Société)” 정책을 펴던 때였다. 우파 정부이기는 하되, 표현의 자유 강화나 보다 열린 사회를 지향했다는 설명을 할 수 있을 테지만, 경제정책은 기본적으로 콜베르주의였다.

세계사 책에서 보신 거 기억하시나? 한국어로 바꾸자면 수출진흥정책 쯤 되겠다. 국내의 임금 수준을 상당히 인상한 것 이상으로(!) 환율을 더 올려서(더 평가절하해서) 수출을 크게 늘린다는 얘기다. 어디 그것만이랴? 지금도 좀 그렇기는 하지만 당시의 프랑스 우파는 기본적으로 프랑스중심주의이지 친미가 아니었다.

이게 무슨 얘기로 이어지냐 하면, 1969년 당시까지 유지되고 있던 브레튼-우즈 시스템이 미국에게만 유리한 제도라 비판하면서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공격한 나라가 프랑스였다. 약간 이전의 얘기지만 샤를 드골은 하야하기 직전부터 달러보다는 금이지!(장난스레 적었지만 달러의 고평가는 당시 누구나 알고 있었다) 하면서 공식 환율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금을 바꿔 가져오기 시작했었다. 금의 운반은 프랑스 해군이 실시했다.

일종의 미국 공격인 셈. 그리고 미국은? 공식 환율로 바꿔가는 것이고, 브레튼 우즈 체제에서는 쉽게 환율을 못 바꾸니까 그냥 빼앗길 수 밖에 없었다. 과연 미국은 버틸 수 있었을까?

버틸 수 없었다. 게다가 1969년 프랑 환율 급상승은(무려 11%를 평가절하했고, 그렇기 때문에 신문 1면에 실린 거다) 더이상 버티게 하기 어렵게 만들었었다. 독일도 마찬가지. 베스트마르크는 1971년 브레튼우즈를 탈퇴했고, 스위스 프랑도 같은 해에 브레튼우즈를 탈퇴했다. 


그리고 1971년 8월 15일. Econ-nerd들에게는 또 하나의 광복절이 이 날이다. 변동환율제가 수립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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