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 노리스는 한번 죽은 적이 있다 하지만 척은 그것을 극복했다 ~ 이소룡 감독의 1972년작 <맹룡과강> 에 관하여

감독: 이소룡

주연: 이소룡, 묘가수, 위평오, 척 노리스, 황종신, 류융, 소기린, 로버트 월, 황인식

음악: 고가휘

촬영: 니시모토 타다시

15세 관람가 / Color / 100분, 133분 (확장판)

원제: 猛龍過江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호러 장르물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테넌트> 라는 작품이 있다. <혐오>, <악마의 씨>와 엮여 설명되는 '아파트 3부작' 중 마지막 편이기도 한데, 여기에서 이소룡과 관련된 인상적인 시퀀스가 하나 있다. 이자벨 아자니와 주연까지 맡은 로만 폴란스키가 <용쟁호투>를 보러 가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마약이 제조 되고 있는 지하 공간에서 적들을 제압하는 이소룡의 모습이 한창 비춰지고 있다. 그 때 이자벨 아자니가 이소룡의 모습을 보고 점점 오르가즘을 느끼는데, 그러다 결국 로만 폴란스키와 극장에서 끈적한 짓을 한다.

이 시퀀스를 처음 봤을 때 대단히 흥미로웠던 것은, 백인 여자를 달아오르게 만든 대상이 동양 남자 '이소룡' 이란 사실을 직접 보여줘서 였다. '이소룡 이전에 과연 서양에서 인지도를 높게 얻은 동양 배우가 섹시함의 대상으로까지 다가온 적이 있었던가?' 라는 것에 대해 말만 들었지, 일종의 증거랄까. 그런 걸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테넌트>가 이소룡 요절하고 3년 뒤에 개봉한 작품이었으니, '증거' 가 될만했다. 동양의 배우가 서양 여인을 성적으로 흥분시키는 전무후무한 풍경을 보면 이소룡이란 사람은 본능적으로 좋아할 수 밖에 없는 매력덩어리 그 자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그가 골든 하베스트 영화사에서 슈퍼스타로 비상을 하게 된 건 어쩌면 '예정'된 일이었을 것이다.

*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1976년작인 <테넌트>. "이자벨 아자니가 폴란스키 허벅지 만지는 것까지 내가 봐야 되겠냐!?" 라고 생각하신다면 굳이 안 보셔도 된다.

다만 이소룡은 슈퍼스타 였으면서 자신의 무도가로서의 사상, 그리고 영화로 표현하고 싶은 야망을 실현시켜 줄 좋은 감독을 만나지 못했다. 이를테면 미국 진출작인 <용쟁호투>의 감독인 로버트 클로즈도 그랬고, 성인배우로서의 첫 극영화 주연작인 <당산대형>, 후에 출연한 <정무문>의 감독인 나유도 그랬다. 나유 감독의 경우에는 예전에 성룡 감독의 <사제출마> 리뷰에서도 언급했었지만, 영화 촬영에 신경쓰기 보다 경마 도박하러 가는데 바빴던 사람이었다. 물론 영화밥 먹고 살만한 특징은 갖고 있었다. 바로 주인공으로 하여금 마음 속에 응어리진 분노를 잔혹한 폭력과 절규로 표출하는 직접적이고 말초적인 감성이었다. 이것이 지지부진한 줄거리와 투박한 영화적 만듦새를 메우는 효과를 발휘하는데, 이 때문에 나유 감독의 작품도 의외로 마냥 못 만들지는 않았구나 싶은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정무문>은 특히 작품의 시대적 배경과 나유 감독의 특성이 맞아떨어져 당대 중화권 관객들의 감성을 제대로 건드린 경우에 속한다. 다만 배우인 이소룡의 입장에서 두 작품은 상당히 아쉬웠을 것이다. <정무문>에서 잠시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거나 다채롭게 변장을 하는 연기를 보여주기도 했지만, 그는 거의 상대를 향한 끊임없는 분노와 복수만을 연기했다. 흥행과는 별개로 그는 나유 감독의 스타일 안에 강제로 머물러야만 하는 측면이 있었다. 나유 감독이 이소룡은 자기가 키웠다고 떠들고 다녔던게 마냥 무리는 아니었다.

이소룡은 그 말을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역 배우 시절을 거친 잔뼈 굵은 베테랑 배우이기도 하지만, 일단 아버지인 이해천이 유명한 경극 배우였다. 나유 감독의 능력이 아니라 '피는 못 속인다' 라고 보는게 옳았을 게다. 그래서 그는 나유 감독이 마침내 차기작 시나리오를 들고 왔을 때, 거절하고 영화적 관계를 끊어버린다. (일단 나유 감독이 갖고 온 차기작의 시나리오의 퀄리티는 굉장히 후졌다고 한다.) 이소룡은 이 참에 스스로 감독일도 겸해보자는 결심을 한다. 한 김에 이탈리아 로케이션도 감행해보고. <맹룡과강>은 그렇게 만들어진 이소룡의 '도전적인' 첫 감독작이었다.

<맹룡과강>을 처음 봤을 때가 기억난다. 배우의 첫 감독작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봐서였는지, 다소 적응하기 힘들었던 작품이었다. 초반 25분은 아예 시추에이션 코미디이다. 울부짖는 이소룡을 기대한 관객들은 난생 처음 이탈리아 로마에 와서 어리바리 하고 있는 당룡이 낯설었을 수도 있으리라. 심지어 도입부에서 몇 분 정도 초점이 나가기까지 한다. 낯설고 성의없다는 생각마저 드는 초반부였다. 그러나 다시 본 <맹룡과강>은, (여전히 고유한 단점들이 있긴 하지만) 어쩌면 이소룡의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가장 걸작이겠구나 싶었다. 영화적으로 가장 '새끈한' 외면을 갖춘 <용쟁호투> 보다도 더 말이다. <사망적 유희> (많은 사람들이 <사망유희>로 알고 있지만 작품의 원 제목은 <사망적 유희> 였다.) 가 의도대로 만들어지지 못한 채 이소룡이 죽음을 맞이했기에, 그가 가진 모든 매력들을 왜곡없이 담아낸 유일한 작품이기도 하다.

도입부에 몇 분간 초점이 나가버리는 기술적 실수와, 배우가 기존에 보여주지 않은 연기를 하기에 그거 적응한다고 처음에 신경쓰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다시 감상할 때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순간은 바로 당룡이 처음 이탈리아에 도착했을 때 그를 바라보는 한 노인의 시선이었다. 처음엔 단순히 이방인을 낯설게 바라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참 다른 곳을 바라보던 당룡이 뻘쭘함을 못 이기고 말을 걸 때도 노인은 동일하게 무표정이다. 쿨레쇼프 효과 같다. 똑같은 표정에서 느껴졌던 낯선 경계의 기운은 곧 상대를 짐승 바라보듯 하는 경멸의 시선이 된다. (끽해야 몇 분 나오지도 않는데, 이름 모르는 이 서양 노배우가 연기를 얄밉게 참 잘 했다.) 일면 서양인이 동양인을 얕보는 민족주의적인 순간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맹룡과강>은 웨스턴의 느낌으로 작품을 이끌어 나간다.

* 이런 장면들을 보면 나름 '황야의 결투'?

개인적으로 연상된 작품은 리 반 클리프와 줄리아노 젬마가 나오는 <분노의 날> (1967) , 혹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과 주연을 겸한 <평원의 무법자> (1973) 였다. 두 작품이 가진 큰 공통점은 외부에서 들어온 이방인에게 마을 사람들이 경계심을 갖는다는 점이다. 물론 주인공들이 나름의 꿍꿍이속을 내비치거나 불쾌한 행동들을 저지르긴 하지만, 마을 사람들 자체가 기본적으로 공정하거나 깨끗하지가 않다. 그래서 주인공들에게 협력하지만 마뜩찮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며 (<평원의 무법자>), 때로는 대립각을 이루는 악역이 되어 싸우기도 한다. (<분노의 날>) <맹룡과강>은 어떻게 보면 두 가지 특징을 다 품고 있다. 삼촌의 말을 듣고 이탈리아로 왔을 뿐인 당룡을 심히 거슬려 하는 마피아 세력이 있고, 심지어 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 꾸준히 그들에게 시달리는 같은 사람들마저도 당룡을 탐탁찮게 생각한다. 이제 남은 건 주인공인 그가 이 불만을 잠재워 버리는 것 뿐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리 반 클리프가 놀라운 실력으로 마을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했듯이, 이소룡이 연기하는 당룡은 놀라운 무술실력으로 자신에게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들을 한 번에 무장해제 시켜버린다.

<맹룡과강>은 어찌보면 무도가로서의 이소룡을 가장 많이 드러낸 작품이다. 이소룡이 출연한 전작들과 달리 이 작품에서의 당룡은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러 온 인물이다. 그렇기에 실력 과시 전에 레스토랑의 사람들이 더이상 피해를 입지 않게끔 도움을 줘야 한다. 레스토랑의 일원들은 모두 가라데를 배우는 중이다. 자신들이 배우는 무술에 대해 자부심을 드러낼 때, 당룡은 웃으며 그 무술에는 이러이러한 부족함이 있음을 말한다. 이에 대해 레스토랑 직원들은 당룡이 아무것도 모를 것이라 생각하고 비웃는다. 이를 깨부술 그의 화려한 액션 신이 시작된다. 이 작품에서 느껴지는 감독의 이미지는 분명 '연기도 잘 하는 무도인' 이다.

'무도를 할 줄 아는 영화배우'

의식했던 것일까? <맹룡과강> 에서 감독은 단순히 힘과 기술로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왜 효과적인지를, 어떤 문제점이 있으며 이로 인해 어떤 효과를 거둘 것인지를 고려한 후에 나온다는 점을 관객에게 정확히 인식시키고 있다. 이로서 그는 이전 출연작에서는 부족했던 '격' 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 격의 효과는 악역까지 어느 정도 누리게 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서 자신이 가고 있는 무도의 길이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하는 것 같다. 말도 말이지만, 이런 상황설정을 보고 있으면 더욱 그렇다. 당룡은 복싱으로 맞서는 마피아 조직원을 바로 때려 눕히고는 그 위에 앉아서 상대를 노려본다.

상대는 일어서 있고 자신은 앉아있는 상태. 유리할 수도 있겠지만, 위에서 압박을 가하는 식의 공격을 당하면 승산이 없다. 그러나 마치 이소룡은 이렇게 앉아있어도 상대방의 태세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듯 단박에 서 있는 사람도 제압해 버린다. 이소룡은 자신의 몸 자체가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 깔고 앉아서 깍지 끼고 서 있는 사람 쳐다보는 모습이 과한 컨셉으로 보이거나 하지는 않는다.

초중반부의 주된 적이었던 마피아들은 자신들의 실력으로는 당룡을 당해낼 수 없다는 점을 알고, 돈에 움직이는 세 명의 악역들을 고용한다. 이 중 척 노리스 가 연기하는 미국인 가라데 고수 콜트가 작품에서 마피아들을 압도하는 최고의 악역이 된다. 콜트와 당룡의 10분간에 걸친 최종 결전이 <맹룡과강>의 하일라이트인데, 이 격투 시퀀스에서 작품이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품격을 응축시키고 있다.

사실 말이 10분이지, 시작과 마무리에 거의 절반 가까운 시간을 쏟아붓고 있다. 시작은 서로의 실력을 예측한 두 고수가 몸을 푸는 모습이다. 두 사람이 옷을 벗고 근육을 풀어주고 또 긴장시키며 대결을 할 최적의 몸 상태를 만드는 과정을 짧지 않은 시간으로 표현한다. 그 뒤에 척 노리스와 이소룡을 결투시킨다. 여기서 이소룡은 드물게 '비교적 맞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당연히 주인공인지라 곧 상황을 역전시킨다.

당룡이 자신의 스타일을 바꾼 후, 콜트를 농락할 때 카메라는 넓은 시네마스코프 프레임에서 이소룡이 슬로우 모션으로 텅 빈 콜로세움에서 화면 프레임의 가장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프레임의 가장 앞에서 가장 깊숙한 지점까지 자유롭게 오고 가는 인상적인 순간이 있다. 콜로세움에서 로케이션을 했지만, 정작 두 사람의 대결은 세트 촬영을 하여 편집을 통해 끼워넣을 수 밖에 없었다. 세트 촬영 특유의 폐쇄성이 자주 드러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시네마스코프 프레임 안에서 수평과 수직으로 종횡무진 하는 배우 이소룡의 움직임이 세트 특유의 폐쇄성을 박살낸다. 배우 이소룡을 움직이는 감독 이소룡은 여기서 마치 평소 사상적으로 영향을 받은 철학자인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의 가르침을 자신의 작품 속에 집어 넣으려는 것만 같다. 가장 비좁을 것이라 생각했던 좁은 공간에서 모든 것이 사라지고 보이는 것은 당룡이란 인물 한 명 뿐이다. 동시에 그 속에서 지금 당장이라도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무한으로 생겨난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작품은 마냥 격투 시퀀스의 승패로 결말을 진행하지 않는다. 윗부분에서 작품이 품격을 도입하기 시작하면서 악역들도 긍정적 효과를 누린다고 썼는데, 이 순간에 등장하는 것이다. 콜트가 자신이 수세에 몰렸음을 알았을 때 오히려 묘하게 미소를 짓는 순간이 있다. 그 미소는 긍정적이면서도 또한 묘하게 허무하다. 당룡 역시 적이긴 하지만 그가 더이상 자신에게 대항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다. 한 사람의 미소와 다른 한 사람의 침울함 사이에는 죽음이라는 것이 자리잡고 있다. 말하자면 두 사람 모두 서로의 승부에 대해 패배를 인정하는 수준에서 끝낼 의향이, 자의든 타의든 결과적으로 없다는 얘기다.

모든 사람들이 삶과 죽음 사이에 살고 있다. 그러나 <맹룡과강>은 이 순간, 마샬 '아츠'와 살인이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가혹한 사실을, 그로 인해 무도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마주하는 어떤 비애를 관객에게 일깨워 준다. 그것은 자신이 긍지를 가지고 오랜 세월동안 익혀온 무술이 살인의 한 형태가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다.

* 척 노리스 일생의 연기는 <맹룡과강> 에서 이미 나와버렸다. 솔직히 이 때는 이소룡을 압도한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척 노리스는 후에 '부활' 하여, 우주최강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세계 각국을 돌며 쌀이 아까운 놈들을 일망타진했다. 그 때 '우주최강' 이라는 명성을 얻었는데, 솔직히 이 순간만큼의 표정연기를 보여주지는 못했다고 생각한다.

위에서 웨스턴 이야기를 했는데, 작품은 처음 당룡과 콜트를 만나게 할 때, 서부의 남자들이 총을 빼들기 위한 구도를 이용한다. 당룡이 콜트를 찾으려 콜로세움의 이 곳 저 곳을 돌아다닐 때 엔리오 모리코네가 지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의 사운드트랙을 삽입되기도 하고. 이는 당시 중화권 작품들이 서양음악을 무단으로 사용하는 경향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작가적 의도로 삽입된 것이겠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이소룡의 이전 출연작에서 등장했던 악역들도 모두 무술을 할 줄 아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죽여도 되는 불한당으로 묘사됐다. 콜트라는 인물도 딱히 다를 건 없다만, 작품 속에서 그는 최소한 자신이 무도인이라는 인식 하에서 행동하고 있다. 당룡은 성치 않은 몸으로 고통스럽게 반격하려는 그의 목을 결국 꺾어버린다. 작품의 카메라는 당룡이 콜트의 목을 꺾은 직후의 반응을 한동안 지켜본다. 애써 감정을 억누르는 듯한 당룡은 콜트의 도복을 주워 그의 시신 위에 덮어줌으로써 애도를 표한다.

이 작품 속에서 주먹과 발은 총만큼 치명적이다. 당룡은 마피아들의 횡포를 매번 막아냈지만, 어떻게 보면 그로 인해 누군가의 탐욕을 자극한다. 결국 이는 작품 속에서 원치 않는 사망자가 발생하는 원인이 된다. 주인공이지만 끝끝내 이런 것들은 막지 못하는 것이다. 작품은 죽음의 경계선을 때때로 넘어가야 하는 것도 모자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 순간을 마주해야 하는 무도가들의 운명을 말한다. 나유 감독의 <정무문>은 일본의 침략, 그리고 사부의 원수라는 주제 아래 이 가혹한 운명과 현실을 회피했지만 <맹룡과강>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도움을 주러 온 한 무도가가 감당해야 할 숙명을 비교적 무겁지 않게, 전체적으로는 꽤나 유쾌하게 보여준다. 감독 이소룡이 배우 이소룡의 표정과 몸동작을 빌어 간단하지만 확고하게 말이다. <맹룡과강>은 그렇게 걸작으로 남았다.

p.s.

1)

뭐,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딱히 이소룡과 관련해서는 좋지 않은 평가를 티 나지 않는 선에서 주로 하는 것 같다. 무술 관련 기자인 피아즈 래픽이 2010년에 저술한 인터뷰집인 <Bruce Lee : Conversations> 를 위해 인터뷰를 할 때 '배우' 가 아니라 '무술 지도가' 로서 골든 하베스트 사에 있었다. 영화에는 정말 뜻이 없었는데, 그 영화사에서 <맹룡과강>에 출연해 달라고 간곡히 요청했기 때문에 마지못해 응했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조금 삐딱하게 보자면, '무술가인 나는 영화 나부랭이는 찍고 싶지 않았다' 뭐 그런 느낌 같기도 한데, 문제는 2010년에 저렇게 말한 황인식은 정작 <맹룡과강> 이후, 90년대 초까지 TV와 영화, 한국과 홍콩을 오고 가며 쉴새없이 영화에 출연했다는 점이다. 이 작품 전에 이미 영화 두 편에 출연한 건 어쩔 수 없이 응했다 치더라도 이 작품 이후에도 모영, 홍금보, 성룡 등과 함께 하며 나름의 전성기를 누린 사람이 저리 말하는 풍경이 별로 좋게 보이지는 않는다. 말하고 행적이 안 맞는 거잖아. 한 입으로 두 말하면 쓰나.

2)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뭔 조화인지 <맹룡과강>의 도입부에 초점 나가는 것도 그렇고, 이소룡과 묘가수가 이탈리아 시내를 둘러볼 때 카메라가 꽤나 불안정한 모습을 보인다. 작품 속에 인상적인 앵글들이나 구도가 여럿 있는데, 이 촬영감독이 왜 이렇게 영상을 불안정하게 찍었는지 모르겠다. 조금만 더 안정적이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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