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소썰] 그녀의 사정

@piggy8894

제 인생이 가장 빛날 때가 아니었나 싶던 그 시절 전 우리나라가 아닌 곳에 있었어요. 사람도 날씨도 경치도 모두 밝은 그런 곳이죠. 하루 하루가 걱정 없이 행복했어요. 그날도 다른 날과 다를 것 없는 날이었어요. 친구들과 커피가 참 맛있던 다운타운의 카페에 갔어요. 그리고 봤어요. 그를. 그 날로부터 5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이지만 아직도 그 순간이 생생하게 떠올라요. 조금은 소란스러웠던 실내에서 제 눈엔 오직 그만 보였어요. 눈 앞에 이상형이 살아 움직였어요. 쌍꺼풀 없이 긴 눈, 오똑한 콧날, 갸름한 얼굴형에 적당한 키와 날씬한 체형.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깔끔하지만 댄디한 스타일의 헤어와 의상까지. 그는 혼자서 책을 읽고 있더군요. 완벽했어요. 심장이 쿵쿵쿵 뛰었어요. 궁금해졌죠. 어느 나라 사람일까.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일본 사람인가.

이윽고 커피가 나왔고, 곧바로 도서관에 가려는 친구들을 붙잡고 조금만 있다 가자고 했어요. 제 눈은 그를 떠날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용기가 나질 않았어요. 바보 같이 주저하고 또 주저했죠. 그가 떠나면 어쩌나 조마조마하면서도 입이 떨어지질 않았어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바보같은 저는 그를 그저 바라만 보다가 카페를 나섰죠. 그 때 눈치 빠른 친구 하나가 묻더라구요. 아까부터 이상하다고. 그래서 말했어요 그 사람에 대해서. 친구가 아까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그 사람도 저를 의식하는게 보였다며 자신이 대신 말을 걸겠다고 하더라구요. 너무 바보 같잖아요.. 직접 말도 못하고 친구가 제 맘을 전해준다니. 그렇지만 전 바보였어요. 결국 친구가 대신해주었고, 그는 한국인이었어요. 저는 그 사람의 연락처를 받았어요.

우리는 그 날 저녁에 바로 만났어요. 그는 저보다 세 살 위의 오빠였어요.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그저 행복하고 마냥 부끄러워서 바보같이 자꾸 땅만 보게 되더라구요. 차마 눈을 보고 말할 수가 없었어요. 그러자 그가 왜 자꾸 아래만 보냐고 싱긋 웃더라구요. 전 얼굴이 빨게졌어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말이죠. 그는 부산 출신의 커피와 사진을 좋아하며 건축을 전공하는 유학생이었어요. 우린 통하는게 많았어요. 그와의 대화가 즐거웠고 어느새 카페가 닫을 시간이 됐더군요. 카페에서 버스정류장까지 걸으면서는 밤하늘에 대해서 이야기했어요. 그렇게 시작됐어요 우리는. 그의 따뜻한 눈빛이 정말 좋았어요. 항상 따뜻하게 날 바라봤어요. 아주 가끔씩 나오는 부산 억양이 좋았어요. 억양을 숨기려하는 그가 사랑스러웠어요. 처음엔 그의 외모에 반했지만, 그의 내면은 더 내 사람인 듯 했어요.

정말 세심했어요. 제가 약속시간에 조금 늦고 말았던 어느 날. 허겁지겁 약속 장소에 도착했는데 그는 어느 때 처럼 미소 띤 얼굴로 손에는 두 잔의 커피가 들려있었어요. 저에게 말했어요. 따뜻한 게 좋을지 차가운 게 좋을지 몰라서 둘 다 준비했다고. 그런 사람이었어요.

비가 오던 어떤 날은 한 우산을 쓰고 노래를 들었어요. 그 때 흘러 나오던 노래는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똑같다면' 그런 순간에는 세상에 우리 둘만 있는 것 같았어요. 세상이 우릴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어요. 행복했어요.

그렇게 사랑했던 그는 제게 과거의 사람이에요. 왜냐하면.. 사실 전 한국에 남자친구가 있었어요. 그 사람에게 첫눈에 반해서 제 욕심에 시작했지만, 그를 정말 사랑하게 되면서.. 이렇게 좋은 사람한테 나는 자격이 없다는 걸 알았죠. 거짓으로 시작된 사랑이 진짜가 될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돌아섰어요. 그와 모든 연락을 끊었고, 저는 곧 다른 도시로 떠났어요. 그리고 그 당시 남자친구에게는 모든 걸 고백했어요. 남자친구는 저를 용서한다고 괜찮다고 했지만 제가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어요. 그렇게 저는 혼자가 됐어요. 나쁜 여자라고 욕하셔도 좋아요. 아니 욕하세요, 저도 잘 알고 있으니까. 그는 제게 있어서 항상 아파요. 영문도 모른 채 사라진 저를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많이 아팠을지 미안해요. 5년이란 긴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전 다른 사람도 만나고 다른 사랑도 했지만, 그 사람을 떠올려요. 우산 위로 후두둑 하고 떨어지던 빗방울 소리, 날 바라보던 따뜻한 눈길 그리고 '똑같다면'. 다신 볼 수 없을 그이지만 행복했으면 좋겠네요.

기적은 내게 와주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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